항목 ID | GC01101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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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甘雨-戰鬪 |
영어의미역 | Gamujae Battle |
이칭/별칭 | 음성지구 전투,무극리 전투,甘雨치 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걸순 |
성격 |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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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50년 7월 4일 |
종결연도/일시 | 1950년 7월 10일 |
발생(시작)장소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
관련인물/단체 | 국군 제6사단 제7연대|제1사단 제11연대 |
[정의]
1950년 7월 4일부터 7월 10일까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역사적 배경]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으로 전쟁을 도발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였다. 국군 제6사단 제7연대는 장호원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방향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7월 4일, 음성군 방면으로 이동하여 방어망을 구축하고 북한군에 대비하게 되었다.
[경과]
1950년 7월 5일, 국군 제6사단 제7연대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 부근에서 북한군을 포위하여 섬멸하였다. 7월 6일과 7일, 국군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던 북한군을 공격하여 무극리를 탈환하고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지역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반격을 받고 후퇴하여 부용산과 무극리 남쪽 백야리 351고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일전에 대비하였다.
7월 8일, 국군 제6사단 제7연대는 서부에서 이동해 온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에 진지를 인계하고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북한군 15사단 병력이 남하해 오자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감우재(기름고개)에서 적 1개 중대를 섬멸하고, 또 다시 공격해 오는 2개 중대도 격퇴하였다. 7월 9일, 북한군 1개 대대 병력이 재차 공격해 오자 제11연대 제2대대는 감우재에서 적을 격퇴하였다.
[결과]
6·25전쟁 당시 감우재에서는 4차의 전투가 벌어졌다. 감우재 전투에서 국군은 북한군 2,707명을 사살하였고, 170명의 포로를 잡았다. 또한 각종 포 24문, 박격포 7문, 차량 65대, 장갑차 7대, 기관총 55정, 소총 1,187정, 무전기 4대를 노획하는 등의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감우재 전투에서 국군은 71명이 전사하였고, 113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감우재 전투를 포함한 음성지구 전투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이 거둔 최초의 승전으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켜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군과 국민들에게 승리에 대한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다. 현재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 산1-1 일대에는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6년 무극전적국민관광지가 조성되었고, 2003년 11월에는 감우재전승기념관을 개관하여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