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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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藝術 |
영어의미역 | Art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증재록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서 창작되거나 전승되고 있는 미적 표현물이나 표현 행위.
[개설]
충청북도 음성 지역은 지형적으로 궁벽하지만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해 왔으며 산업화 속에서도 농촌의 고유성이 짙은 구비·민요·농요가 전승되어 왔다. 음성 민요의 경우 음성 지역이 경기도·강원도와 접하고 있어 두 지방의 민요가 혼합되어 있으며 노동요가 많다. 노동요로 「모찌기 노래」·「모심기 노래」·「상여 소리」·「달구질 소리」 등이 있고 타령으로는 「거북이 노래」·「화투풀이 노래」·「중 타령」 등이 있다.
제영(題詠)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서강(徐岡)의 「고목행상인(古木行相引)」, 서거정(徐居正)의 「백구겸수정(白鷗兼水靜)」, 양희지(揚熙止)의 「지벽산장현(地僻山藏縣)」, 권극화(權克和)의 「의송정(倚松亭)」, 신재영(申在英)·최숙생(崔淑生)·이석형(李石亨)·이병연(李秉延)의 「우음(偶吟)」, 이수강(李守綱)의 「설성천고지(雪城千古地)」 등이 전해오고 있다.
[문학]
1. 전통시대
상고시대인들은 제천 의식과 가무를 통해 문학의 싹을 틔워왔다. 신을 즐겁게 하고 민중의 감정을 북돋우어 주던 송축사(頌祝詞)나 제사(祭詞)는 그 사이에 끼는 노래와 함께 서사시로서 신화와 전설을 낳게 했다.
악장가사에 실려 있는 「상대별곡(霜臺別曲)」은 조선 초 권근(權近)[1352~1409]이 지은 경기체가 형식의 악장으로 조선의 창업을 노래한 것이다. 권근은 고려 말 충주로 유배되었을 때 양촌(陽村)이란 마을에 살면서부터 호를 양촌이라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아들 권제(權踶), 손자 권람(權擥) 등 3대의 묘가 같이 있으며 지방기념물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권근의 둘째 아들인 권제(權踶)[1387~1445]가 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과 함께 지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최초의 한글 문헌이다.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묘가 있는 이지걸(李志傑)[1632~1702]은 한시 1,500여 수와 『금호유고(琴湖遺稿)』를 남겼다. 원남면 조촌리 출신의 류성원(柳誠源)은 단종 때 사육신 중의 한 사람으로 시조 작가로도 이름이 있다. 원남면 조촌리에서 출생한 정수곤(丁壽崑)[1452~1486]은 『월간집부유교(月幹集府遺矯)』를 남겼다.
2. 현대
충청북도 음성의 향토 문단의 경우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성장에 적당한 여건이 마련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음성 출신의 걸출한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1908년 1월 14일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 오리골에서 태어난 농촌 문학의 거봉 이무영(李無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1985년 작고 25주년을 맞아 고향인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이무영 문학비를 세웠고, 1994년부터는 매년 무영제(無影祭)가 개최되고 있다.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서 태어난 김용제(金龍濟)[1909~1994]는 1931년 「사랑하는 대륙」을 발표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시 운동에 투신하여 경향 문학 활동을 하였다. 같은 생극면이 고향인 서정범(徐廷範)은 국문학자이며 수필가·평론가로 한국적인 정서와 샤머니즘의 세계를 추구하는 작품 「샤머니즘에서 본 한국적 문학」 등 다수를 발표하였다.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태어난 박재용(朴材用)은 195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입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후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고 1969년 한국 문학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외설 시비에 휘말렸던 소설 「반노(叛奴)」를 발표한 염재만(廉在萬)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가 고향이다.
1986년 『월간문학』에 소설이 당선된 후 연작 소설 「바람가르기」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2007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에 당선된 『한국작가』 창간 대표 김건중(金健中),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등 수필집을 펴내고 음성문인협회 회장과 음성군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반숙자(潘淑子), 미국동부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정기(金貞起) 등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가 고향이다.
또 시인이며 화가인 권오욱(權五旭)은 삼성면 용성리가 고향이고, 『서울신문』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고 2004년과 2007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에 당선된 한분순(韓紛順)은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서 태어났으며, 시집 『석인상(石人像)』 등을 남긴 이상화(李相和)는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가 고향이다.
3. 문학 단체 활동
음성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각급 학교 내에서의 문학 동아리 활동 외에 대중 문학 활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문예(新文藝)』와 『문학세계』를 통하여 활동하던 증재록이 1987년 12월 26일 자신의 시집 『푸시개』 출간 기념회에서 문학회 발기 모임을 가진 뒤 1988년 5월 음성문학회를 창립하였으며 1989년 4월 30일 동인지 『음성문학』을 창간하였으며, 현재 설성백일장(雪城白日場)을 개최하고 있다.
이후 점차 대중 문학의 기운이 일면서 1992년 음성주부문학회와 글벗회, 1993년 글갈골 그리고 1994년 음성문화예술협회가 각각 창립하게 된다. 증재록이 발행한 『글·갈·골』에서는 군민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는 『쪽지문학』을 24절기마다 펴내었으며, 음성문화예술협회는 네 면짜리 타브로이드판 향토 문화 소식지인 『음성문예』를 분기마다 발간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는 음성여성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1995년 10월 18일에 수필 부문 반숙자, 시 부문 증재록, 동시 부문 남상희를 주축으로 한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음성지부가 중앙회로부터 인준을 받게 되어 음성군 문학사에 새로운 전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후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반영호의 「노을」이, 2005년 『동양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최석희의 「2월 민들레」가, 2007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이정희의 「나이테」가 각각 당선되어 문학의 질적 향상도 기하게 되었다.
이렇듯 서울 및 청주·충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문학 활동이 1990년대 이후부터 음성군에도 확산되어 각 문학 동인지를 통한 작품 활동이 활발해 지기 시작하여 많은 문인이 배출되면서 음성의 고유 정서를 개성 있는 향토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
1. 전통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은 민족 문화의 창달에 기여한 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음성군 원남면 심용리 수안동에서 태어난 채수(蔡壽)[1449~1515]는 1475년(성종 6) 이조정랑(吏曹正郞)으로 있으면서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장악원(掌樂院)의 관직을 겸하였으며 저서로 『나재집(懶齋集)』이 있다. 채수의 패관 소설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은 그 내용이 민심을 자극한다고 하여 탄핵과 함께 소각되기도 하였다.
또한 1482년(성종 13)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정수강(丁壽崗)[1454~1527]은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서 출생하였고 글씨와 문장이 유창하였으며 한문 소설인 「포절군절(抱節君節)」을 저술하였다.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로 묘를 옮긴 유언수(兪彦鏽)[1721~1786]는 필재가 뛰어나 중국과 조선의 명인 필법을 두루 습득하여 『해보(楷譜)』를 냈고 「홍성참판공묘비(洪城參判公墓碑)」를 남겼다. 유언수의 아들 유한지(兪漢芝)[1760~1834]도 중국의 전(篆)과 예(隸)를 습득하여 우리나라 전예의 으뜸이라 일컬었으며 강릉 경포대 현판을 썼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현종 때 음성현감을 지낸 신명준[1803~1842]은 아우 신명연(申命衍)과 함께 산수화를 잘 그려 명성을 떨쳤다. 음성군 원남면에서 출생한 유만형(柳萬馨)[1896~1957]은 조선전도문인대회 서예 부문에서 2등, 한시 부문에서 장원을 하였으며 행서와 초서를 잘 썼다.
이처럼 선인들의 예술에 대한 예지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맥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음성 출신의 예술인들은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2. 현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쌍봉리에서 출생한 구영회(具永會)는 1939년 일본 태동서도원(泰東書道院) 공모전에 서예 작품이 입선된 이후 많은 시문과 서화를 남겼으며, 구영회의 아들 구자무(具滋武)도 제28회·제29회 국전에서 연속 특선하는 등 모두 7회에 걸쳐 입선하였다. 성악가 테너 김선일은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한국화가 이주원은 금왕읍, 이종환은 음성읍이 고향이다.
도예가로는 경기도 이천에 항산(恒山)도예연구소를 개설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임항택이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자랐고,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한 권신(權慎)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가 고향이다.
이처럼 음성 출신의 예술인들은 향토의 이름을 대외적으로 떨치며 중진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음성에서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향토 예술 문화를 창조·계승·발전시키려는 기운이 일면서 문화 관련 동호회가 결성되어 자수·꽃꽂이·미술·서예·사진 등의 전시회와 음악회 등이 개최되는 등 괄목할 만한 양상을 보이며 발전을 하게 되었다.
동호회로는 제12회·제13회 한국현대미술대전에서 공예부 특선을 한 유견춘(柳見春), 꽃꽂이 전문 연구가 박차봉(朴次奉), 1인사물놀이 기능 보유자 이지환(李智煥), 제5회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입선한 조성필(趙成弼), 1994년 충북미술대전 도자기 부문에서 특선을 한 성낙정, 부부 도예가인 이경현과 김동연, 조형 예술가인 이세우, 서양화의 신재흥이 각각 분야별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민속 예술 분야에서는 1982년 광주에서 개최된 제2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음성 거북놀이가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하였고, 1994년 제1회 충북농악경연대회에서는 음성군 소이면 갑산농악대가 우수상을 받았으며 이어 1995년 제2회 대회에서는 삼성어우리패농악단이 출전하여 감투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12회 충북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가요계에는 가요 「논개」를 부른 한국방송 연기자노조 가수지부의 초대 지부장인 이동기와 록 그룹 노고지리의 한철수·한철호가 음성읍 출신이다. 또한 영화와 TV 분야로는 1977년 MBC 9기 공채 탤런트로 2007년 현재 MBC 탤런트 실장을 맡고 있는 정한헌은 금왕읍이 고향이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 각종 연극과 TV 연속극에 출연하고 있는 정진도 음성읍이 고향이다.
[단체 현황]
1980년대 이전까지 문화 예술 전문 단체는 특별히 없었고 또한 지역에서 활동하던 현대 예술의 특별한 재능자도 드물어 창작 예술보다는 전통 문화 예술 계승과 발굴 시연 등이 중심이었다. 이후 1982년 음성문화원이 설성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전통 문화에서 현대 문화까지를 아우르는 문화 예술 발전의 축이 되었다.
이후 1987년 12월 음성문학회가 발족되고, 이후 한국문인협회 음성지부, 한국국악협회 음성군지부, 한국미술협회 음성지부, 한국음악협회 음성지부 등 각 예술 단체가 창립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97년 5월 6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음성지부가 인준되면서 활동이 활발해졌다.
문화 예술 단체의 경우 문학 분야로 음성문학회·풋내들문학회·무영문학회·둥그레시동인회·짓거리시문학회(금왕문학회)·원남문학회가 있다. 국악 분야로는 삼성향악당·음성풍물패·소이천두레풍물패·원남풍물패·감곡풍물패·대소큰울림국악예술단·생극풍물패·금왕울림풍물패·맹동신바람풍물패가 활동하고 있다.
미술 분야로는 현대자수회·아름다운음성작가회·음성민화회·수정한지그림연구회·환경미술협회가 있고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하여 작품화하는 정크아트갤러리가 있다. 음악 분야로는 생극한울림여성합창단과 음성체임버오케스트라가 있다. 사진 분야로는 감우재영상회와 설성포커스가 있고, 꽃예술 분야에는 윤진꽃꽂이회와 화정꽃예술중앙회가 있어 음성의 예술 문화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