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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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州牧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이우태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가 속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행정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가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를 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성종 2년(983)에 12목(牧)을 설치하면서부터였다. 목은 정치상의 중심지에 설치되었는데, 12목은 양주(楊州)·광주(廣州)·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진주(晋州)·상주(尙州)·전주(全州)·나주(羅州)·승주(昇州)·해주(海州)·황주(黃州)이다. 12목이 설치되고 지방관이 파견됨으로 인해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본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미치기 시작할 수 있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성종 때 광주목의 관할 범위는 광주목[현재의 광주시·성남시 및 서울특별시 강남구·서초구·강동구·송파구 일부]과 영현인 현재의 이천시였으며, 현종 9년(1018)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4개의 속군[천영군·이천군·죽주·과천]과 3개의 속현[지평현·용구현·양근현]을 거느리게 되었다.
[변천]
12목은 성종 14년(995)에 12군(軍)으로 개편되면서 목사도 절도사(節度使)로 바뀌었다. 이때 광주목은 봉국군(奉國軍)으로 이름을 고치고 관내도(關內道)에 예속되었다. 그 뒤 현종 3년(1012)에 안무사가 되었다가, 현종 9년(1018) 8목(牧)을 정할 때 다시 목이 되어 양광도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충선왕 2년(1310) 8목에서 제외되었으나 공민왕 5년(1356) 다시 광주목으로 복구되었다. 조선 시대 태조 4년(1395)에 경기의 관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