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현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22
한자 栗峴店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세곡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나각순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율현동 일대에 있었던 조선시대 공무여행자(公務旅行者)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시설.

[개설]

조선시대에는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사신은 물론이고, 상인 등 일반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공공 여관인 원(院)이 운영되었다. 아울러 원은 역제(驛制)와 더불어 역원제도로 운영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역원제의 변형 모습인 참점(站店)으로 발달하여 신원점(新院店)율현점(栗峴店)이 운영되었다. 여기서 참점은 원점(院店)과 같은 것으로 원과 주점이 결합된 형태로 행인에 대한 숙식·음료 제공과 물자유통 기능이 이루어져 상공업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 우역(郵驛)제도가 운영된 이래 고려 시대에 역참이 전국적으로 조직 운영되었으며 왕권 강화에 기여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도성 내의 도로 정비 뿐만 아니라 전국의 간선·지선도로를 망라하여 대·중·소로의 등급을 정하고 도로교통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관할구역을 정해 역원을 설치하였다.

이중 원은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1,310개소가 설치 운영되었다. 원우(院宇)를 짓고 서울 지역은 5부, 지방은 수령이 부근의 주민 가운데 승려·향리·관리로써 대로는 5호(戶), 중로는 3호, 소로는 2호를 원주(院主)로 임명하였다. 이들에게는 잡역을 면제해주는 대신 원의 운영 책임을 맡겼다. 또 원의 운영경비로 원위전(院位田)을 주었으며 한성부와 관찰사가 이를 감독하였다.

원은 교통사정이 원활하지 못한 당시에 여행자를 도둑이나 맹수로부터 보호하였다. 또 지방에서 기로연(耆老宴)를 베풀기도 하였고, 진제장(賑濟場)을 두어 굶고 병든 사람을 구제하는 역할도 하였다. 또한 공무여행자 뿐만 아니라 일반 행인에게도 휴식과 숙박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우의 관리가 철저하지 못하고 폐지되기가 일수여서 공무여행자의 숙식을 관·역이나 민간업자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임진왜란 후 파발제도의 실시와 함께 파발의 참(站)마다 참점이 설치되었는데, 그 다른 이름이 원점이다. 참점은 후에 주점·주막으로 부르는 거리 집으로 발전하였다.

[내용]

조선시대에 한성에서 지방으로 연결되는 전국 도로망 가운데 용인로나 광주로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사평나루·청담나루·삼전도·송파나루 등을 건너야 했다. 이에 사평나루에 원이 설치되면서 사평원이 등장되었고, 여기서 양재역을 지나 조선시대 광주부 서쪽 35리 지점 언주면신원점과 연결되어 남쪽으로 20리 지점에 있는 판교와 용인 지역으로 나가는 길목이 되었다. 그리고 율현점대왕면에 있었는데, 광주부에서 서남쪽으로 25리이고, 남쪽으로 판교까지 20리에 있다. 동남쪽으로 15리 거리에 추령(秋嶺)으로 이어져 용인에 이르는 통로가 되었다. 다시 북쪽으로 15리에 있는 삼전도를 건너 한성에 이른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한양 도성을 나와 사평나루·청담나루·송파나루를 건너 광주로와 용인로로 이어지는 대로 길목에 위치한 원점으로써, 중요 교통로를 운영하는데 휴게소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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