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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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奉恩本末寺誌 |
이칭/별칭 | 봉은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호선 |
편찬 시기/일시 | 1943년 -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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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94년 - 『봉은본말사지』 연재 |
소장처 | 『봉은본말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
성격 | 사지 |
저자 | 안진호 |
간행자 | 이철교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의 연혁을 기록한 일제 강점기의 사지(寺誌).
[저자]
『봉은본말사지』를 찬술한 안진호(安震湖)[1880~1965]는 일제 강점기 활동했던 대표적인 불교강사이자 저술가로 안진호라는 법명과 안석연(安錫淵)이라는 속명 외에도 소백두타(小白頭陀), 만오생(晩悟生) 등의 필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본명은 석연(錫淵)이고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1880년(고종 17)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16세에 예천 용문사(龍門寺)에서 불경을 읽다가 발심하여 이듬해인 1896년 신일(信一)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하였다. 9년 동안 용문사 강원에서 수학한 뒤 김룡사, 대승사, 봉선사 등의 강원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06년 세워진 명진학교(明進學校)의 1회 졸업생이기도 했다. 1914년에는 예천 용문사와 봉명사 연합으로 불교포교당을 설치했을 때 여기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25년에는 조선불교단의 일본시찰 사업의 일환으로 일본 불교를 시찰하기도 했다. 1929년 서울에 올라와 서대문정 2정목 29에 ‘만상회(卍商會)’를 열어 불교서적의 번역과 출판 및 보급에 진력하였다.
안진호의 활동 중 주목할 것은 당시까지의 불교의례를 집대성한 『석문의범(釋門儀範)』 간행과 1927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지(寺誌) 편찬 간행이다. 이 가운데 봉선사, 전등사, 유점사의 사지는 간행되었고 백양사, 석왕사, 김룡사, 봉은사는 사지를 수집·정리하였으나 간행되지는 못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943년 안진호가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홍일초(洪日初)의 의뢰를 받아 편찬이 이루어졌다. 안진호는 봉은사의 법운(法雲) 이종익(李鍾益)[1912~1991]과 함께 봉은사의 83개 말사(末寺)를 순력하며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러나 그 원고와 자료는 2차 세계대전, 해방, 한국 전쟁 등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간행되지 못하다가 이철교의 노력으로 『서울 및 근교사찰지』[원제는 『봉은본말사지』]라는 제목으로 1994년 잡지 『다보(多寶)』에 연재되어 소개되었다.
[구성/내용]
1편 본사 봉은사를 비롯하여 2편 경산(京山)의 사찰, 3편 삼각산의 사찰, 4편 관악산의 사찰, 5편 도봉산의 사찰, 6편 여주의 사찰, 7편 용문산의 사찰, 8편 근기(近畿)의 사찰, 9편 폐사(廢寺) 등 9편으로 구성되어 74개 사찰과 폐사, 163개의 사암을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각 본말사의 위치, 연혁, 편년, 역대주지, 상설, 법보, 재산, 불구 및 귀중품, 편액·주련·제영, 명승·고적·전설, 문헌 등의 순서로 서술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제 2편과 6편은 흩어져서 없어진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안진호의 일련의 사지간행 사업으로 이루어진 『봉은본말사지』는 일제 강점기 때까지 남아 있던 봉은사 및 말사의 연혁과 유물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1498년(연산군 4) 견성사가 봉은사로 중창되기 이전의 역사는 권상로의 「봉은사사적비명」과 본 자료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봉은본말사지』 편찬은 일제 강점기 불교계 내부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1911년 사찰령(寺刹令) 이후 30본사(本寺)를 중심으로 하는 본사의식이 강화되면서 경쟁적으로 사지편찬을 비롯한 사찰의 역사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봉은본말사지』는 간행되지는 못했지만 일제 시대 불교계의 동향, 불교계에서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정리, 당시 불교계의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상대적으로 사료가 빈약한 봉은사의 연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