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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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昌誼 |
이칭/별칭 | 성방(聖方),익헌(翼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영조대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 일대를 관할했던 광주유수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방(聖方), 세종의 아들 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이언강(李彦綱), 아버지는 참봉 이태제(李泰躋)이다. 어머니는 홍우구(洪禹九)의 딸이다. 그가 죽자 부인 윤씨가 음식을 먹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 무덤에 장사하니 조정에서 열녀로 정문을 세우고 영조가 제문을 지어 치제하도록 하였다.
[활동 사항]
1735년(영조 11)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설서(說書)·정언(正言)·지평(持平)·교리(校理)·수찬(修撰) 등 언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741년에는 북도독운어사(北道督運御史)로 파견되어 북도 일대를 돌아보면서 기민(饑民)의 구제를 위한 진휼곡(賑恤穀)을 수송하였다. 1744년 승지(承旨)로 승진한 후 이듬해 대사간(大司諫)에 올랐으며, 1749년에는 진하 겸 사은부사로 중국 연경을 다녀왔다. 내직으로는 육조 판서 가운데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서의 판서를 지냈으며, 1768년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외직으로는 충청도와 전라도 및 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지방 행정을 살폈고, 1755년에는 광주유수(廣州留守)로 부임하여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비롯한 경기도 광주 전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1772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재직 중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익헌(翼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