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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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市計劃展示 |
이칭/별칭 |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새서울백지계획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설정임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의 개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새서울백지계획과, 대서울도시기본계획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시.
[개설]
1966년 8월 13일에 발표된 ‘대서울도시기본계획’은 24개년 장기계획으로 인구 500만이 거주할 694,214,876㎡[2억 1천만평]의 서울을 개발하겠다는 것으로 3천 2백 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제1기 년도와 제2기 년도로 나누어 각각 12년씩, 1기 년도마다 1, 2차 5개년계획과 그 중간에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것이었다. 이는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된 채 도로망계획 같은 것도 없이 경기도 때 당시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서울의 동서남북 교외부에 가로망을 그려 넣는 계획이었다.
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서울시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 ‘대서울도시기본계획전시장’이라는 것을 가설하여 서울 변두리의 5천분의 1 지형도를 붙이고 거기에 종횡으로 가로망을 그려 넣은 ‘서울도시기본계획도’와 ‘새서울 백지계획’ 모형도를 붙여 전시하였다.
그리고 광복절 오전 10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시장이 개관테이프를 끊고 낮 1시부터 시민에게 공개하였는데, 전시는 그해 9월 15일까지 1개월간 이루어졌으며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당시 관람인원 총수는 79만 6998명으로 하루 평균 2만 4906명이 관람한 셈이며, 당시 시내 전가구 수를 64만 9,290가구로 잡을 때 한 가구당 1명 이상이 관람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논과 밭, 또는 야산이 자기마을에 큰 길이 뚫리고 시가지가 개발된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시민들이 모여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