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릉을 지나며 감회가 일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1953
한자 過二陵有感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69년 - 권필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2년 - 권필 사망
배경 지역 선릉, 정릉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100길 1[삼성동 131]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절구
작가 권필(權韠)[1569~1612]

[정의]

조선 시대 권필선릉과 정릉의 두 왕릉을 지나며 느낀 감회를 읊은 한시.

[개설]

「이릉(二陵)을 지나며 감회가 일어」권필(權韠)[1569~1612]의 『석주집(石洲集)』 제7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릉’은 조선조 성종(成宗)의 능인 선릉(宣陵)중종(中宗)의 능인 정릉(靖陵)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해 있다. 이 두 왕릉은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도굴되어 시신을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고 하는데, 권필은 이릉을 지나며 전란 때 능침(陵寢)이 훼손된 일을 떠올리며 그 감회를 한시로 읊었다.

[구성]

「이릉(二陵)을 지나며 감회가 일어」는 칠언절구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서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능침이 훼손된 일을 개탄하고 후반부에서는 두 왕릉을 지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내용]

증파삼한작일가(曾把三韓作一家)[삼한을 한집안처럼 사랑하셨건만]

백년회겁한무애(百年灰劫恨無涯)[백 년 만의 회겁에 통한이 끝없어라]

고신필마릉전로(孤臣匹馬陵前路)[외로운 신하 필마 타고 능 앞길에서]

누습동청만수화(淚濕冬靑滿樹花)[동청 나무 가득 핀 꽃을 눈물로 적신다]

[특징]

「이릉(二陵)을 지나며 감회가 일어」는 제1구에 가(家), 제2구에 애(涯), 제4구에 화(花)의 운자를 썼다.

[의의와 평가]

「이릉(二陵)을 지나며 감회가 일어」봉은사 옆에 있는 선릉과 정릉을 지나며 통탄의 심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성종의 사후 100년쯤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능침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백 년 만의 회겁이라고 하였다. 중국 동청(冬靑)의 고사를 끌어와 왕실의 능침이 훼손된 바를 애도하는 뜻을 잘 표현하였다. 동청은 본래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잎은 긴 타원형이고 꽃은 작고 흰색이다. 원나라 때 강남(江南)의 총관(總管)인 승려 가목양랄륵지(嘉木揚喇勒智)가 송나라 왕실의 능침을 마구 도굴하여 시체를 아무 곳에나 버리자, 이에 회계(會稽) 산음(山陰) 사람인 당각(唐珏)이 자신의 가산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금전을 빌려 제왕들의 유골을 모아서 목갑(木匣)에 넣고 황색 비단으로 싸서 각각의 유골마다 능호(陵號)를 쓴 다음 위차에 따라 난정산(蘭亭山) 남쪽에 묻고, 송나라 상조전(常朝殿)에 있는 동청 한 그루를 파서 그 위에 심어 표지를 하고 「동청행(冬靑行)」이란 시를 지어 애도하는 한편 해마다 한식이 되면 몰래 제사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고전종합DB(http://www.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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