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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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錫魯 |
영어음역 | Sin Seokr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영월. 홍문관 박사 신응명(辛應命)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재주와 인품이 뛰어나고 효우(孝友)를 함께 갖추었다. 또한 총명하여 나이 13세에 시문(詩文)을 지었고 서체가 뛰어났다. 1804년(순조 4)에 강릉의 송담서원(松潭書院)에서 공부할 때 화재가 일어나자 여러 유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흩어졌으나, 신석로 홀로 동요하지 않고 먼저 묘우(廟宇)에 들어가 위판을 받들고 나와 서원 앞의 안인동(安仁洞) 물속에 세워 놓아 다행히 다 타버리는 것을 면했다. 그 당시 동백(東伯) 신공(申公)이 이를 듣고 가상히 여겨 포창하여 말하기를 “만약 독서하는 선비이자 도리를 아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어찌 창졸간의 어지러운 틈에 그 직분을 다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마음을 미루어 본다면 부모와 윗사람을 섬기는 것도 가할 것이요, 절개를 지켜 의에 죽는 것도 가할 것이니 이 어찌 뛰어나고 탁월하지 않겠는가?” 하며 소와 술을 상으로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