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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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遺蹟-遺物 |
영어음역 | Yugyo yujeok·Yumul |
영어의미역 | Confucian relics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조현범 |
[개설]
강원도 강릉 지역에 소재한 유교관련 유적과 유물의 총칭.
[개설]
강릉향교(江陵鄕校)를 중심으로 한 유교의 보급은 강릉 지역 유림과 유교사상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에 따라 강릉에서는 일찍부터 많은 향현들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많은 유교 건축물들이 건립되었다. 즉 향현들의 큰 가르침을 잊지 않고 그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리고 강릉 지역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과 유림의 숭상을 받는 유학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많은 건축물을 건립하였다. 이와 함께 강릉 향현들의 생애와 행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유물들 역시 현재 남아 있어서 강릉 지역 향토문화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널리 소개되고 있다.
[현황]
1. 유교 유적
강릉의 유교 유적은 통상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관학교육기관인 향교(鄕校), 조선시대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서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인 서원(書院) 그리고 흔히 사우(祠宇)로 통칭되는 유교 건축물로 나눌 수 있다. 사우란 선조(先祖) 혹은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수차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를 말한다. 사우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불린다. 대개 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이사(里祠)·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 등으로 불리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위치한 강릉향교는 교육기능과 제사기능을 함께 하기 위하여 문묘와 명륜당을 두고 있다. 문묘는 공자를 비롯한 선현에 대한 제사의식을 행하고 있다. 명륜당은 유학을 공부하는 곳이며, 명륜당 좌우양편의 동서재실은 유생과 제관들이 머물거나 때로는 선현을 봉안하기도 했던 장소이다. 강릉향교는 고려 말기에 창건되었으나 조선 초에 이르러 대성전과 동무·서무를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조선 중기 이후에 중수된 것으로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고 있다.
강릉의 서원으로는 오봉서원(五峰書院)과 송담서원(松潭書院)이 있다.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위치한 오봉서원은 성산면에서 오봉댐으로 가는 초입 우측의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오봉서원은 영동지방에서는 1556년(명종 11)에 최초로 설립된 서원이며 공자를 배향하고 있다. 후에 오봉서원에 주자와 우암 송시열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다. 현재는 집성사(集成祠), 오봉강당(五峯講堂), 칠봉사(七峯祠)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1115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인 송담서원은 율곡 이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학생을 교육하던 곳이다. 강동초등학교 앞길을 따라 군선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상류 오른쪽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묘우 6칸, 월랑 7칸, 동재·서재 각 3칸, 강당 10칸, 서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1804년에 화재로 대부분 타버리고 사당만이 남아 있었다. 그 후 지방유림의 도움으로 강당, 장경각 등을 원래의 모습으로 증건 하였으나, 1871년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그러나 1905년에 지방유림들의 모금을 통해 원래의 서원자리에 묘우를 다시 짓고,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의식을 올리고 있다.
현재 강릉 지역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사우들 외에도 근현대에 들어와서 각 지방 문중에서 조상들을 존숭하기 위하여 설립한 사우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조선시대에 건립되어 연조가 오래되었으며, 강릉의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사우들을 열거하면 향현사(鄕賢祠), 화부산사(花浮山祠), 황산사(篁山祠), 경양사(鏡陽祠), 회암영당(晦庵影堂) 등을 들 수 있다.
2. 유교 유물
강릉의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유교 유물로는 신사임당과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관련된 유물 그리고 그 가족들의 유물들과 회암영당에 모셔진 주희(朱熹)의 영정(影幀),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을 관리로 선발했던 과거시험의 합격자 명단인 『정덕계유문무잡과방목(正德癸酉文武雜科榜目)』 등이 있다.
율곡 이이와 관련한 유물로는 율곡 이이의 친필 원본인 『격몽요결(擊蒙要訣)』, 율곡 이이가 사용하던 벼루, 율곡 이이가 작성한 토지양여서(土地讓與書) 등이 있다. 『격몽요결』 수필본은 율곡 이이가 42세 때인 1577년(선조 10)에 병조참의를 그만두고 향리인 해주(海州) 석담(石潭)에서 지은 것이다. 현재 『격몽요결』 수필본은 율곡 이이의 외가인 권인구 가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이는 율곡 이이가 외가댁을 극진히 생각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외조부를 봉사하는 마음에서 이종에게 주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율곡 이이가 썼던 벼루는 그 크기가 가로 9.1㎝, 세로 16.1㎝, 두께 0.8㎝이며, 1971년에 지방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율곡 이이가 자신의 토지를 이종인 권처균(權處均)에게 양여한다는 증서인 토지양여서는 가로 26㎝, 세로 46㎝의 크기인데, 1971년에 벼루와 함께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 율곡 이이 가문의 유물로는 1971년에 지방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신사임당(申師任堂)이 그린 여덟 폭 병풍, 1971년에 지방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매창매화도(梅窓梅花圖)」 그리고 「옥산국화도첩(玉山菊花圖牒)」과 「옥산서병(玉山書屛)」 등이 있다. 이들 유물들은 오죽헌 내에 있는 율곡기념관에 보관·전시되어 있다. 매창은 신사임당의 맏딸이고 옥산은 막내 아들이다. 이 그림첩들은 매창과 옥산 남매의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강릉의 유교 유물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회암영당에 있는 주희의 영정이다. 지방유형문화재 제106호인 주희영정은 충주에 있는 운곡서원(雲谷書院)에 봉안했던 것을 1777년(정조 1)에 오봉서원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1868년에 서원철폐령에 의해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 그 후 1887년에 강릉에 거주하던 주씨문중 사람들이 영당을 짓고 성균관과 예조에 청원하여 회암영당에 봉안하였다.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조선조 방목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덕계유문무잡과방목(正德癸酉文武雜科榜目)』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정덕계유문무잡과방목(正德癸酉文武雜科榜目)』을 인쇄한 활자가 세종조 때 만들어진 초주 갑인자이기 때문에 활자문화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정덕계유문무잡과방목(正德癸酉文武雜科榜目)』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명단으로 가로 17.5㎝, 세로 30㎝이며 37매로 된 저지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