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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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守璜 |
영어음역 | Choe Suhw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임호민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생애]
본관은 강릉.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기거사인(起居舍人)·군부정랑(軍簿正郞)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때 좌승지에 올라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였으며,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거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치사(致仕)하였다.
[활동사항]
최수황은 독실한 불자(佛者)로 불법(佛法)을 좋아하고 시를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고 한다. 또한 인품이 정직하고 부지런하였으며 검약했다고 한다. 최수황은 집이 가난하여 의식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였으나 이에 구애받지 않았다. 하루는 왕지별감(王旨別監) 임정기(林貞杞)가 배 한 척에 쌀을 가득 싣고 와서 건네주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왕이 주시는 것도 받지 않았거늘 하물며 백성들의 피땀 어린 것을 어떻게 받겠는가?”하고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직함과 근검함을 칭송하였다.
처음 국학학유 겸 도병마록사(國學學諭兼都兵馬錄事)의 벼슬을 할 때 공무로 여러 재상들의 집을 순회하면서 어떤 사안에 대하여 찬성하거나 인정하는 표식으로 문건에 서명을 받았다. 한 재상집에 들렀더니 의관도 쓰지 않고 손님을 대하고 있기에 재상 앞에 나갔다가 문서를 들고 다시 물러나 엎드려 있었다. 재상이 여러 번 앞으로 오라고 했으나 나갈듯 하면서도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으니 그때서야 재상이 깨닫고 의관을 정제하고 나왔다. 최수황의 고집과 아첨하지 않는 성품이 이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