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6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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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鏡洛帖 |
영어공식명칭 | Gyeongrakcheop |
이칭/별칭 | 『경락 계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죽헌동 2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규대 |
제작 시기/일시 | 1750년 - 경락첩 작성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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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5년 3월 6일 - 경락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경락첩,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현 소장처 | 오죽헌 시립 박물관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죽헌동 201] |
성격 | 계첩 |
서체/기법 | 한문 필사본 |
소유자 | 경락회 |
관리자 | 오죽헌 시립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강원도 문화재자료 |
[정의]
1750년부터 작성된 강릉과 양양 지방 거주 양반 사족들이 결성한 시회의 계첩.
[개설]
『경락첩(鏡洛帖)』은 강릉과 양양 지방에 거주하는 양반 사족들의 모임인 경락회의 계첩이다. 경락회는 1750년(영조 26)에 결성되었고, 강릉의 대표적인 명소인 경포(鏡浦)와 양양 지방의 대표적인 명소인 낙산(洛山)의 첫 글자를 따서 ‘경락회(鏡洛會)’라 명명하였다. 경락회는 일 년에 두 차례 회합을 가지는데, 결성 초기에는 3월에 강릉에서 열렸고 10월에 양양에서 열렸다. 두 지역의 양반 사족들이 함께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시회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경락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근래에는 3월 18일과 7월 18일에 개최하고 있다. 경락첩은 2015년 3월 6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경락 계첩(鏡洛契帖)』이라고도 한다.
[형태 및 구성]
규격은 세로 43㎝, 가로 28㎝이며, 실로 책을 묶은 선장(線裝) 형태이다. 전체 24쪽으로 편집되었다. 책의 표지에는 전서(篆書)로 ‘경락첩(鏡洛帖)’이라 쓰여 있다. 첫 모임은 1750년 7월 경포에서, 두 번째 모임은 1750년 10월 낙산에서 하였으므로 첩 앞부분은 「경포 연회첩(鏡浦宴會帖)」, 뒷부분은 「낙산 연회첩(洛山宴會帖)」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경락첩은 1750년 처음 작성된 것이고, 이후의 것은 6·25 전쟁 때 소실되고 남아 있지 않다. 1960년대 이후부터 다시 작성하기 시작한 조문첩(弔問帖), 도기(到記), 원부(原簿), 회의록 등을 회원이 따로 보관하고 있다.
[특징]
먼저 「경포 연회첩」으로 구성원들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붉은 실선으로 한 쪽에 6칸의 간격을 정하고 83명의 명안을 세로쓰기를 하였다. 먼저 성명을 쓰고 그 아래 출생 간지와 자(字)를 주로 처리하고, 그 아래에 거주지를 기록하였다. 다음으로 경락회 결성의 취지와 계기를 밝히는 서문이 실려 있다. 다음은 「낙산 연회첩」이 수록되었으며, 그 명안과 취지문의 기재 형식은 「경포 연회첩」과 동일하다.
[의의와 평가]
경락회는 두 개 도시의 양반 사족들이 결성한 계회이다. 강릉과 양양은 인접한 도시이면서 주민들의 이주가 빈번한 곳이었다. 특히 강릉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를 가진 주민들이 양양 지방으로 이주하여 세거하였으며, 이들은 비록 양양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본관지인 강릉 지방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문중의 구성원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또한 강릉과 양양 사람들은 인접한 도시였기에 서로 간에 혼인이 성사되면서 친인척 관계가 유지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 양상은 지리적으로 인근한 도시였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양자 간의 친연성(親緣性)이라는 사회적·지리적 배경에서 경락회가 결성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락첩은 사회사적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