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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마을-지리적 환경과 역사-땅이름의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T07004
한자 鶴-地理的環境-歷史-由來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집필자 김흥술

[명칭유래]

학산굴산사가 있어 옛날에는 굴산(崛山)이라 했는데, 그 후 마을 뒷산 우거진 노송에 학들이 서식해 부락의 자연경치가 절경을 이루었고 이를 가리켜 ‘학산(鶴山)’이라 하였다.

이 지역의 독특한 지명들의 유래를 살펴보면서 먼저 마을과 골의 이름부터 알아보자.

왕고개에서 마을로 오면서 오른쪽으로 옛길너머에 있는 골이 가랑골이다. 이곳에 옛날에 곶집이 있었다. 도둑골은 큰골 안에서 동쪽에 있는 작은 골이다. 골 안으로 들어가면 도랑처럼 움푹 파인 골이 있다. 옛날 도둑들이 이 골에 와 숨어 있었다. 뒷골은 1리와 2리 사이에 있는 큰 골인데 골로 계속 들어가면 조고리골과 만난다. 막시바탕은 큰골 안에서 서쪽에 있는 작은 골로 도둑골 건너편에 있다. 옛날 마을 사람들이 나무나 풀을 하러 다닐 때 제일 마지막 골인 이곳까지 와서 일을 하고 갔다고 한다. 문군이골은 앞 고개와 계속 이어져 있는 골인데 조고리골과 부모골로 갈라진다. 메깨골은 선래골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골이다. 마을의 개척 성씨인 평해황씨의 시조 묘가 이곳에 있다. 부모골은 조고리골 서쪽에 있는 골이다. 조고리골에 할아버지의 묘를 쓰고, 그 골 옆골에 부모의 묘에 썼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새잇말은 재궁말과 아랫말 사이에 있는 마을이고 서지골은 구정초등학교 앞에 있는 골인데 둔지 아래쪽으로 담산리와 경계를 이룬다. 선래골(仙來)[泄川]은 마을에서 제일 마갈에 있는 큰 골로 눈물바위에서 대성사(大成寺)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다. 재궁골 남쪽 마을로 이 골의 경치가 좋아서 신선이 올만하다 하여 선래(仙來)라 했다. 저수지가 있는 남쪽에서 흘러오는 냇물이 이곳에 이르면 땅속에 복류(伏流)가 된다. 이곳에 학생야영장이 있다.

쉰뱀은 뒷골 너머에 있는데, 다닥다닥 붙은 계단식 논이 쉰 개쯤 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시리전은 재궁말 북쪽 탑골 너머에 있고 아당골은 메깨골 아래(북쪽)에 있다. 아당골은 골이 다른 골보다 작아 아담하게 생겼다고 하는데 아담이 변해 아당으로 됐다. 왕고개에서 마을로 오면서 오른쪽 첫 번째 골로 양짓말 앞쪽에 있는 골은 앞고래다. 토양이 비옥하여 벼농사가 잘 된다. 왕고개에서 마을로 들어오면서 오른쪽이 양짓말인데 1리 1반 일부와 2반 일부를 포함한다. 어삼밭골은 자반둔지[일명 연당버덩] 위에 있는 골인데 옛날에 어씨들이 삼밭을 일궈 살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장안리(長安里)[장안재 아래에 있는 마을] 고려말 우왕이 이곳에 기거하였으므로 서울 장안과 같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재궁말(齋宮村)은 학산2리 마을회관이 있는 일대로 이곳에 이 마을을 개척한 평해황씨들의 재실이 있다. 굴산사터가 이곳에 있었고 재궁말 뒤에 학바위가 있다. 학바위가 있는 골 넘어 서쪽 골이 조고리골[조곡(祖谷)]이다. 옛날 손자가 이 골에 할아버지의 묘를 쓰고 난 다음에 난리가 나서 피해 다른 곳에 갔다. 난리가 끝나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할아버지 묘를 찾으려고 하니 묘를 찾을 수 없어 “저 골에 할아버지가 계시는지, 저 골에 계시는지.” 하면서 찾았다. 그런 뜻에서 할아버지골이 되었다. 또 이 골에 부모의 묘를 쓰고 난리를 피해 다른 곳에 갔다 와서 부모의 묘를 어디에 쓴지 확실히 몰라 “저 골에 부모님이 계시는데… 저 골에 부모님이 계시는데…” 하면서 한탄하였는데 ‘저 골에…’라는 말이 와전되어 조고리골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조밭굼은 조고리골 안 행랑청 위에 있는 골이다. 조밭굼 위에 있는 골이 큰 굼이다. 진골[장곡(長谷)]은 큰골에서 동남쪽에 있다. 긴 골안에 연일정씨 시조 묘가 있다. 큰골은 대성사가 있는 골인데 매봉산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낙맥골을 말한다. 재궁말 뒤에 있는 골로 굴산사의 부속 부도탑이 있는 곳은 탑골이다. 퇴찬이[도찬동(道贊洞)]는 문군이골 안쪽으로 여찬리와 경계 지역을 말한다.

다음으로 산과 봉우리, 재의 이름을 들어본다.

갈미봉은 법왕사 뒤 왼쪽에 있는 산. 산봉우리가 3개가 있는데 제일 높은 봉으로 봉이 잘록 하게 생겨 관모(일명 갈모)처럼 생겼다. 갈미봉은 ‘칼(刀)+미(山)=칼뫼’로 칼처럼 뾰족하여 생긴 이름인 것 같다. 군자봉은 정의윤 댁 뒷산으로 마을 가장 중심부까지 들어와 있는 산이다. 봉오재는 봉화대가 변하여 된 말이다. 옛날 봉화를 피우던 곳으로 학산리금광리의 경계 지점으로 지금의 군부대 남측 전차부대가 있던 언덕인데, 강릉역이 이 일대로 옮겨진다는 계획이 있다.

불구남데기는 학산리구정리 사이에 있다. 매봉산 낙맥이 좁게 내려와 이곳에 와서 넓게 퍼졌는데 이 언덕에 있는 나무가 붉은 흙에 휩싸여 있어, ‘붉은 흙에 쌓인 나무가 있는 언덕’이란 뜻이다. 삿갓재[입현(笠峴)]는 왕고개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마지막 낙맥인 추산 옆에 있는 산으로, 새끼 미[추산] 동쪽에 있는 봉이다. 그 아래 절벽 밑에 작은 소(沼)가 있어서 동리 아이들이 여름에 멱 감는 장소로 애용되었다. 삿갓재를 지나면 강릉시 모산동이다.

옥봉(玉峰)은 재궁골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당간지주가 있는 일대다. 봉이 삿갓처럼 생겨 입봉(笠峰)이라고도 하는데 냇물이 산 밑으로 흘러가므로 삿갓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옥봉으로 고쳤다. 왕고개여찬리와 경계에 있는 재다. 고려 32대 우왕 때,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최영을 귀양 보내고, 우왕을 강화도에 귀양을 보냈다가 나중에 강릉으로 옮기고 삼척에서 살해했다. 우왕이 이곳 굴산사 승려들의 도움으로 행궁을 짓고 이곳에 머무르며 이 고개를 넘나들었다. 장안재는, 왕고개를 넘어 학산으로 오면서 능선을 타고 동쪽으로 가면 가마처럼 움푹 파여 있는 곳이다. 고려말 우왕이 이곳에다 행궁을 짓고 머물렀다. 지금도 이곳을 파보면 기와와 토기류가 많이 나오고, 성터도 남아 있다.

다음으로 학마을에 있는 바위들의 이름을 알아본다. 눈물바위는 선래골 입구에 있다. 경사진 산비탈에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떨어질 위험이 없고 바위에서 맷돌질하는 소리가 “툭탁툭탁” 들리며 가물어도 바위에서 스스로 물이 생겨 촉촉이 젖어 있다. 독바위는 설내에 있는데, 바위가 독처럼 생겼다. 바위 중에서 가장 유명한 학바위굴산사 부도탑 서남쪽 기슭에 있는 큰 바위다. 옛날 이 마을에 사는 처녀가 햇빛에 비친 우물물을 마시고, 아이를 잉태해 아기를 낳고 처녀가 애비 없이 아이를 낳으니 창피해서 이 바위 밑에 아이를 버렸다. 그랬더니 학이 나타나 어린 아이를 감싸주고 단실 세 개를 먹여서 살렸다는 범일국사의 신화가 담긴 바위다.

학마을 인근의 들판과 언덕에도 독특한 지명이 많다.

산제당(山祭堂)은 눈물바위 맞은편에 있는 넓은 버덩이다. 옛날 이곳에 호랑이가 있어서 마을에 내려와 어린 아이들을 업어가기 때문에 호랑이의 피해를 없게 해달라고 이곳에 단을 지어놓고 산제를 지냈다. 둔지평(屯地坪)은 굴산사 당간지주가 있는 앞 넓은 들이다. 들이 평평한 둔지를 이루었다고 해서 둔지평이라 부른다. 눈물바위 앞들은 새끼들이라 부르는데, 호랑이가 이곳에서 새끼를 낳고 키웠다고 한다. 앞들은 장현동과 경계 지역인데 마을 서낭이 있는 곳으로 ‘마을 앞에 있는 들’이란 뜻이다. 논이 넓고, 통상 ‘앞뚜루’라고 부른다.

웅덩배미는 왕고개를 넘어와서 오른쪽 첫 번째 논인데 웅덩이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학산리에서 가장 비옥한 논으로 1천 평에 쌀 14가마를 수확했다. 왯둔지는 아마도 와둔지(瓦屯地)의 변형된 말인 듯싶다. 학산2리 마을회관에서 당간지주로 가는 언덕을 일컬으며 옛날에 기와를 굽던 가마터가 있었던 곳으로 경지 정리가 되기 전까지 옛날 기왓장이 나오는 작은 구덩이가 있었다. 자반둔지학산리구정리의 경계 지점으로 큰골 아래쪽의 넓은 둔지다. 지금의 청파농장 남쪽 지대를 말한다. 옛날에 지관이 명당터로 잡아 놓고 묘를 쓰지 못했다고 해서 ‘잡아놓은 둔지’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강릉시가 태권도공원을 이곳으로 유치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장승박이는 학산2리 뒷골과 재궁마을 중간에 위치하는데 옛날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이 서 있어서 일명 장승거리라고도 불렀다.

이 외에도 학산마을의 독특한 지명들은 더 있다.

꽃밭굼은 조고리골 마갈에 있는 굼으로 이 골 안에서 진달래꽃이 제일 많이 핀다. 동무지는 장안재 동쪽으로 장안성의 동문(東門)이 있던 곳이란 뜻이다. 돌무지는 탑골부도탑 앞에 있는 돌무지를 가리킨다. 조그마한 산봉우리인데 이곳에 약 500여 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옛날 이곳에서 돌부처가 나와 굴산사에다 모셨다. 지금도 이곳에서 안택 치성을 드린다. 방축굼이(미륵굼이)는 당간지주에서 정동 쪽으로 둔지평의 동쪽 끝이다. 옛날 이곳에 축대를 쌓아 물을 막았다. 굴산사의 석불(미륵보살)이 있어서 미륵굼이라고도 한다.

병대소는 학산 2리 서낭당 남쪽의 깎아지른 듯한 언덕 밑에 있는 작은 소로 옛날에는 물길이가 상당히 길었고 주변의 왯둔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석천(石泉)은 재궁말에 있는 우물인데, 돌무지 앞이 된다. 옛날 처녀가 이 우물에 와서 표주박에 햇빛이 담긴 물을 마시고 범일국사를 잉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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