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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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甘泉驛 |
영어공식명칭 | Gamcheonyeok Traditional Station |
이칭/별칭 | 감정역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손승호 |
증설|폐설 시기/일시 | 1896년 - 감천역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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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간 | 감천역 - 경기도 가평군 |
해당 지역 경유 구간 | 감천역 -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
성격 | 역참 |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에 있었던 역참.
[개설]
감천역(甘泉驛)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동해안의 평해 지방으로 연결되던 평해로의 일부인 평구도에서 관할했던 12개 역 가운데 하나이다. 평구도(平丘道)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던 평구역을 중심으로 설치된 역로였는데, 한양의 동남쪽으로 향하던 역로였던 만큼 한강 수운에 접한 지방을 통과했다.
[명칭 유래]
감천역은 역이 위치했던 마을의 이름인 감천에서 비롯되었다. 지금의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에서 임금이 길을 지나다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좋아 ‘감천(甘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원]
『여지도서』 「가평군지지」 역원조에는 감천역에 기마(騎馬) 2필, 복마(卜馬) 1필, 역리(驛吏) 5명, 역노(驛奴) 11명, 역비(驛婢) 7명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감천역은 고려시대 춘주도(春州道)에 속한 감정역(甘井驛)이 조선시대 역로를 정비하면서 평구도에 속하게 되면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시대까지도 지금의 경춘선 전철이 통과하는 상천역 부근에 설치돼 서울이나 지방으로 오가는 관리들에게 교통 편의와 숙박을 제공하였다.
또한 감천역 주변에는 ‘점막’이라고 불리는 여관도 여러 개가 운영되었다고 한다. 감천역은 1896년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현황]
감천역은 고려시대 가평 지방에서 개경으로 향하던 춘주도에 있었는데, 춘주도는 일부 구간이 지금의 국도 제37호와 중복된다. 조선시대에는 수도가 한양으로 옮겨옴에 따라 감천역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평구도에 속하였는데, 평구도는 일부 구간이 지금의 국도 제46호와 중복된다. 조선시대에 운영되었던 감천역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