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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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遠翰 旌閭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로 311[금대리 14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인재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863년 - 장원한 정려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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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97년 - 장원한 정려각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6월 17일 - 장원한 정려각 가평군 향토유적 제9호 지정 |
현 소재지 | 장원한 정려각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로 311[금대리 143] |
원소재지 | 장원한 정려각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 물개말 |
성격 | 정려각 |
양식 | 맞배지붕 |
관련 인물 | 장원한 |
문화재 지정 번호 | 가평군 향토유적 제9호 |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장원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건립 경위]
장원한(張遠翰)[1645~1742]은 어려서부터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였다. 장원한이 12세 때 아버지 병이 위독해지자 변을 맛보아 달고 씀에 따라 병세를 살폈다. 상을 당해서는 3년간 상복을 벗지 않았고,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살며 매일같이 호읍(號泣)하였다. 또 홀어머니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려 1년을 더 살게 하였다. 어머니가 사망하였을 때 장원한은 80세의 고령이었으나 3년간 여막(廬幕)을 떠나지 않아 사람들이 칭찬하였다고 한다.
장원한의 효행에 관한 소문이 조정에까지 들어가자 1863년(철종 14) 효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위치 및 변천]
장원한 정려각은 원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 물개말에 있었으나, 청평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지역이 수몰됨에 따라 없어졌다. 1997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로 311[금대리 143]에 복원하였다.
[형태]
장원한 정려각은 정면과 측면 각 1칸씩이며, 맞배지붕 형태의 지붕을 올렸다. 정려각 안에 현액이 걸려 있는데 철종(哲宗)이 내린 것이다. ‘효자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장원한지문 철종계해오월일명정(孝子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張遠翰之門 哲宗癸亥五月日命旌)’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장원한 정려각은 1998년 6월 17일에 가평군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