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757 |
---|---|
한자 | 居昌 皐鶴里 - |
영어공식명칭 | Rice Stone Bridge in Gohak-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시균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758년 - 거창 고학리 쌀다리, 오성재, 오성화 형제가 건립 |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4년 - 거창 고학리 쌀다리 개축 |
현 소재지 | 거창 고학리 쌀다리 -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
성격 | 다리|돌다리 |
관련 인물 | 오성재, 오성화 형제 |
크기(높이,길이,둘레) | 11.10m[길이]|1.5m[폭]|2m[높이]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용원정 앞에 있는 조선 시대에 지은 돌다리.
[개설]
조선 시대에 한양으로 가는 삼남 대로였던 이곳에 다리가 없어 길손들이 불편해 하자, 해주 오씨 오성재(吳聖載), 오성화(吳聖化) 형제가 1758년 백미 1,000석을 내 놓아, 큰 돌을 구하고 석공에게 돌을 다듬게 하여 수백 명의 일족이 3일 동안 운반하여 다리를 놓았다고 전한다. 다리는 용원정 앞의 작은 개울 위에 놓여 있으며, 이런 유래 때문에 ‘쌀다리’라 부른다. 당시 안의 현감 이성중이 이곳을 방문하여 오씨 문중이 크게 번창하는 것은 이런 공덕 때문이라고 칭찬하였다. 그 뒤 1917년 수해 때 다리 한 칸이 떠내려 가서 1964년 3월 후손들이 다시 고쳐 지었다. 쌀다리 근처에 1965년 오시영이 지은 오성재, 오성화 형제의 설교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건립 경위]
삼남 대로를 가는 길손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해주 오씨 오성재, 오성화 형제[입향조 구화공 오수]가 사비를 내어 1758년에 다리를 놓았다. 1917년 대홍수로 다리 한쪽이 유실되어 오랫동안 활용되지 못하다가, 1964년에 후손들이 큰 돌을 구하여 조상들의 뜻을 받들어 개설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동구에 위치하며, 지금은 정자를 오가는 다리로만 활용되고 있다.
[형태]
거대한 두 개의 긴 돌을 다리 상판으로 하여 개울에 걸쳐 놓았다.
[현황]
현재도 쌀다리를 이용하고 있으나, 가끔 옛길을 답사하는 손님들이 오며 용원정에 가기 위한 사람들이 활용한다.
[의의와 평가]
길손들이 다니는 길에 다리를 놓는 것은 살아있을 때 크나 큰 공덕을 쌓는 것으로 조상들은 인식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던 쌀다리가 지금은 활용도에는 떨어지나 조상들의 이타적인 정신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