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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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慎復振 |
이칭/별칭 | 야천(夜川)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광수 |
출생 시기/일시 | 1536년 - 신복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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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19년 - 신복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18년 - 신복진 화천 서원 배향 |
출생지 | 신복진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
거주|이주지 | 신복진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
사당|배향지 | 화천 서원(花川書院)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거창(居昌) |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가계]
신복진(愼復振)[1536~1619]의 본관은 거창(居昌), 호는 야천(夜川)이다. 할아버지는 승훈랑(承訓郞) 신우맹(愼友孟)이며, 아버지는 요수(樂水) 신권(愼權)이다. 어머니는 진사(進士) 임득번(林得蕃)의 딸 은진 임씨(恩津林氏)이다. 부인은 이소백(李小白)의 딸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다.
[활동 사항]
신복진은 1536년(중종 31)에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서 태어났다. 갈천(葛川) 임훈(林薰)에게서 배웠다.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는 과거 공부를 하지 않았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여막을 짓고 죽을 먹으면서 3년상을 지냈다.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이 벼슬을 권하였으나 몸을 바쳐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것은 선비의 수치라 말하며 거절하였다. 1619년(광해군 11) 84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문정공(文正公) 이재(李縡)가 묘갈명을 지었다.
[상훈과 추모]
신복진은 1818년(순조 18)에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화천 서원(花川書院)에 배향되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구연 서원(龜淵書院) 관수루(觀水樓) 동쪽에 야천 신 선생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