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김씨 (전라북도 고창군) |
|
울산김씨 (전라북도 고창군) 관련 수정요청 [연원] ○ 현행 : 울산김씨(蔚山金氏)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로 고려 태조에게 신라를 양위할 때 힘을 다하여 말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행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14세손인 김환(金環)은 고려 시대에 벼슬이 삼중대광 영도첨의사에 이르렀고 울산(蔚山) 학성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울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 변경 : 울산김씨(蔚山金氏)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로 고려 태조에게 신라를 양위할 때 힘을 다하여 말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형 태자(太子)와 함께 개골산(皆骨山)으로 들어갔다고 하며, 또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고도 하나 그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아 상고할 수가 없다. 14세인 김환(金環)은 고려 시대에 벼슬이 삼중대광 영도첨의사에 이르렀고 울산(蔚山) 학성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울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경위] ○ 현행 : 김덕지의 20대손이자 김달원(金達源)의 증손인 신월파(新月派) 파조 김질(金耋)[1484~?]이 조용한 곳을 찾아 무장면 옥산리 신월에 정착하였다. ● 변경 : 김덕지의 19대손이자 중파(仲派) 파조 김달원(金達源)의 증손인 내금위장공파(內禁衛將公派. 전 신월파) 파조 김질(金耋)[1484~?]이 조용한 곳을 찾아 무장면 옥산리 신월에 정착하였다. ○ 현행 : 손암공파(孫庵公派) 파조 김달근(金達根)의 7대손인 김형하(金亨夏)[1632~1698]가 흥덕 사람들의 초빙으로 훈장으로 와서 흥덕면 오호리(五湖里)에 정착하였다. ● 변경 : 장파(長派) 파조 김달근(金達根)의 아들인 좌랑공파(佐郞公派. 전 손암공파) 파조 김신덕(金愼德)의 7대손인 김형하(金亨夏)[1632~1698]가 흥덕 사람들의 초빙으로 훈장으로 와서 흥덕면 오호리(五湖里)에 정착하였다. ○ 현행 : 계파(季派) 파조 김달기(金達技)의 9대손이자 오천공(鰲川公) 김경수(金景壽)의 5대손인 김수륜(金守倫)[1729~1789]이 처가인 성내면 양계리 내토(內兎) 전주이씨 이시열(李時說)의 집으로 이거하면서 정착하였다. ● 변경 : 계파(季派) 파조 김달지(金達枝)의 9대손이자 오천공(鰲川公) 김경수(金景壽)의 5대손인 김수륜(金守倫)[1729~1789]이 처가인 성내면 양계리 내토(內兎) 전주이씨 이시열(李時說)의 집으로 이거하면서 정착하였다. ○ 현행 : 중조 학성군 김환의 17대손이자 문정공파 파조 김인후(金麟厚)의 6대손인 김택휴(金宅休)[1797~1844]가 농사짓기에 좋은 땅을 찾아 흥덕면 동사리로 입향하였고, 아들 김순환(金舜煥)·김상환(金商煥)·김창환(金昌煥) 삼형제가 금반옥호(金盤玉壺)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아산면 반암리(盤岩里)로 옮겨 왔다. ● 변경 : 중조 학성군 김환의 17대손이자 문정공파 파조 김인후(金麟厚)의 9대손인 김택휴(金宅休)[1797~1844]가 농사짓기에 좋은 땅을 찾아 흥덕면 동사리로 입향하였고, 아들 김순환(金舜煥)·김상환(金商煥)·김창환(金昌煥) 삼형제가 금반옥호(金盤玉壺)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아산면 반암리(盤岩里)로 옮겨 왔다. ■ 참고문헌 ■ 1. 울산김씨족보(蔚山金氏族譜) 1977년 정사보(丁巳譜) 2. 울산김씨족보(蔚山金氏族譜) 2015년 을미보(乙未譜) *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