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노동리에 갈대를 물고 나는 기러기[飛雁含蘆] 형상의 명당이 있어 노동(蘆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1497년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이종(朴李宗)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남면(川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노동·등선리(登仙里)·성동리(城東里)·대양리(大暘里...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숙(和叔), 호는 매월헌(梅月軒). 찬성사(贊成事) 박열(朴說)의 13세손이며, 증참의(贈參議) 박현손(朴賢孫)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개(朴漑)이다. 박기호(朴奇琥)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각별하여 어려서부터 정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예로써 몸을 닦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곡식을 모아 군...
1636년 청나라의 조선 침략으로 발생한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이 조선을 침입했을 때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당함으로써 후금에 대해 형제의 맹약을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의 여론은 군사를 일으켜 후금을 치자는 척화배금(斥和排金)[후금에 대하여 화의를 반대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당시 후금은 만주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 부...
1392년에서 개항기까지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역사. 현재의 고창은 고창현과 무장현(茂長縣), 흥덕현(興德縣)이 통합되어 성립되었다. 고창현은 고려 시대에 상질감무가 겸무하였다. 조선 초기인 1401년(태종 1)에 비로소 고창현에 감무를 두었으며, 1455년(세조 1) 지방 방위 조직의 개편에 따라 나주진관(羅州鎭管)의 속읍이 되면서 현감을 파견했고, 속오군(束伍軍)은 입암산성에...
고창 지역 출신이거나 고창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가계(家系)의 연속이 중요시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 하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이(李珥)는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사친(事親)의 도리를 언급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