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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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使公姜膺煥家傳遺物 |
영어공식명칭 | Relics kept by Gang Eunghwan's family |
영어음역 | Susagong Gang Eunghwan Gajeonyumu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31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후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1월 9일 - 수사공강응환가전유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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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수사공강응환가전유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유물|유품 |
제작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제작지역 | 창성과 동래 |
재질 | 생명주[채색] |
소장처 | 강성욱의 집 |
소장처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319 |
소유자 | 강성욱 |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물과 유품.
[개설]
조선 후기의 무신 강응환(姜膺煥)[1735~1795]의 후손 강성욱이 보관하고 있는 유물로, 교지 6점, 초상화 2점, 서책 2점, 지도 2점 등 총 4종 12점이다.「청북변성도(淸北邊城圖)」와 「고려중요처도(高麗重要處圖)」, 그리고 『칠원정적』, 『내영정적』, 「강응환 영정」, 교지 등이 그것이다.
강응환은 1770년(영조 46) 무과에 급제하여 20여 년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압록강 연변 일대와 경상도 해안 일대의 세밀한 군략 지도를 만들어 전쟁에 대비했는데, 이때 제작된 지도가 「고려중요처도」, 「청북변성도」다.
강응환은 진주 사람으로, 전라도 무장현[현 성송면 암치리]에서 출생하였다. 강응환을 일반적으로 강수사공이라 칭한 것은 강응환이 말년에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정3품]를 지냈기 때문이다. 44세 때 내직으로 들어가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와 사헌부(司憲府) 감찰을 거쳐, 이듬해 7월에 경상도 칠원(漆原)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 후 대구영장(大邱營將)을 거쳐 멀리 북변의 함경도 고령진병마첨절제사(高嶺鎭兵馬僉節制使)와 평안도 창성도호부사(昌城都護府使)를 지냈고, 경상도 동래수사(東萊水使)를 2년 동안 역임하였다. 수사공 강응환 가전유물은 1989년 1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수사공 강응환 가전유물 중 「청북변성도」와 「고려중요처도」는 병풍처럼 접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생명주(生明紬)에 채색(彩色)하였다.
「청북변성도」는 압록강 연안 일대의 국경 지대를 그린 것으로, 군사적 목적을 위해 제작되었다. 이른바 강변(江邊) 7읍인 의주(義州), 삭주(朔州), 창성(昌城), 벽동(碧潼), 초산(礎山), 위원(渭源) 및 강계(江界) 등이 그려져 있다. ‘청북’이라는 명칭은 물론 청주강(淸州江)에서 유래하였다. 지도는 12폭으로, 각 폭의 크기는 가로 18.4㎝, 세로 44㎝이다. 윗부분에는 지도에 수록된 각 고을의 지리에 관한 글이 채워져 있다.
「고려중요처도」는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된 16폭의 지도다. 강원도와 접하고 있는 동해안 영해(寧海)로부터 전라도와의 접경인 하동(河東)에 이르기까지의 연안 전역과 그 해안 일대에 산재한 섬들을 그렸다. 지도를 그린 부분이 12폭이고, 나머지 4폭은 설명문으로 되어 있다. 각 폭의 크기는 가로 20.5㎝, 세로 62㎝이다.
「강응환 영정」은 1795년(정조 19)에 왕이 궁중 화공에게 명하여 그리게 한 것이다.
[특징]
강응환이 평안도 창성도호부사와 동래부사로 재직했을 때 방비와 전쟁에 참고할 목적으로 제작한 군략 지도가 각 3부씩 작성되었는데, 한 부는 국왕에게 올리고 한 부는 관아에 비치케 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군략 지도의 작성자는 대부분 드러나지 않는 데 반해, 「고려중요처도」와 「청북변성도」는 작성의 경위 및 작성자가 확인되는 희귀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