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663
한자 蔚山金氏
영어음역 Ulsan Gimssi
영어의미역 Ulsan G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집필자 이기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성내면 양계리 내토|흥덕면 오호리|무장면 옥산리 신월
집성촌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성내면 양계리 내토|흥덕면 오호리|무장면 옥산리 신월
입향시기/연도 16세기
성씨시조 김덕지
입향시조 김질

[정의]

김덕지를 시조로 하고 김질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연원]

울산김씨(蔚山金氏)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로 고려 태조에게 신라를 양위할 때 힘을 다하여 말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형인 마의태자와 함께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나, 그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14세손인 김환(金環)은 고려 시대에 벼슬이 삼중대광 영도첨의사에 이르렀고 울산(蔚山) 학성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울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경위]

김덕지의 19대손이자 중파(仲派) 파조 김달원(金達源)의 증손인 내금위장공파(內禁衛將公派)[전 신월파(新月派)] 파조 김질(金耋)[1484~?]이 조용한 곳을 찾아 무장면 옥산리 신월에 정착하였다. 장파(長派) 파조 김달근(金達根)의 아들인 좌랑공파(佐郞公派)[ 전 손암공파(孫庵公派)] 파조 파조 김신덕(金愼德)의 7대손인 김형하(金亨夏)[1632~1698]가 흥덕 사람들의 초빙으로 훈장으로 와서 흥덕면 오호리(五湖里)에 정착하였다.

계파(季派) 파조 김달지(金達枝)의 9대손이자 오천공()의 9대손이자 오천공(鰲川公) 김경수(金景壽)의 5대손인 김수륜(金守倫)[1729~1789]이 처가인 성내면 양계리 내토(內兎) 전주이씨 이시열(李時說)의 집으로 이거하면서 정착하였다. 중조 학성군 김환의 17대손이자 문정공파 파조 김인후(金麟厚)의 9대손인 김택휴(金宅休)[1797~1844]가 농사짓기에 좋은 땅을 찾아 흥덕면 동사리로 입향하였고, 아들 김순환(金舜煥)·김상환(金商煥)·김창환(金昌煥) 삼형제가 금반옥호(金盤玉壺)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아산면 반암리(盤岩里)로 옮겨 왔다.

[현황]

2009년 현재 문정공파 김택휴의 후손들이 아산면 반암리에, 계파 김수륜의 후손들이 성내면 양계리 내토에 9대째, 손암공파 김형하의 후손들이 흥덕면 오호리에 11대째, 신월파 김질의 후손들이 무장면 옥산리 신월심원면 각시산 자락에 15대째 세거하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군내(郡內)에 120가구에 280명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4.03 입향경위 수정 김달기->김달지 등 울산김씨족보 근거로 수정
이용자 의견
뿌*** 蔚山金氏 金希祖
彦陽金氏 金希祖
道康金氏 金希祖
2019.05.19
정********** 위키백과는 어린이집 다니는 우리애도 쉽게 고칠 수 있는 포털사이트입니다. 방대한 정보를 담을 수 있지만 정보의 신뢰도는 보장 안합니다. 무슨 근거로 저런 글을 올리셨죠? 즉시 고치시고 수정바랍니다. 2018.04.05
정********** 디지털고창문화대전님. 김덕지는 경순왕과 별빈 안씨의 소생으로 경순왕의 아홉째 아들입니다. 혹시 위키백과 보고 쓰신 건가요? 근거/출처 밝히세요. 무슨책/몇째줄/어떤문구인지? 제대로 알고 쓰신 건가요? 모르면서 아는 척 하시는 건가요? 내용확인도 안하고 적은 사람들 밝혀주세요.
  • 답변
  •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소중한 의견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원고는 아마도 1933년에 간행된 '울산김씨족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집필자를 통해 정확한 참고문헌을 확인중입니다.
    귀하께서 제기하신 수정 요청 사항과 집필자의 의견 등을 수합하여 수정 여부를 검토하겠습니다.
    귀하의 의견 개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8.04.05
환***** 울산김씨들은 휘덕지가 학성부원군이라는데 여기서 14세손 휘환이 학성군이라는 근거는요? 2018.03.05
환*****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이라는 기록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범신라김씨에서 부인하는 사실이고 고려시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주김씨가 둘째아들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우세하고 휘덕지가 둘재아들이라는 기록은 전무하고 울산김씨의 일방적 주장뿐인데 버젓히 사실처럼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2018.02.20
환***** 위 기사에서 보듯이 고려초부터 고려말까지 부원군제도가 없었는데 학성부원군은 어디서 온 건가요?
  • 답변
  •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께서 질문하신 학성부원군은 해당 사전 내용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해당 항목에는 김환이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는 서술이 있을 뿐입니다. 해당 내용을 다시 한 번 검토하신 후 질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8.02.12
환***** 고려 초에는 원군(院君), 대군(大君), 군(君), 궁군(宮君), 낭군(郞君), 태자(太子), 후(侯) 등이 종실에게 봉해졌다. 그 후 ‘5등작’ 제도를 통해 종친을 공ㆍ후ㆍ백(公ㆍ侯ㆍ伯)에 봉작했다.
위 기사에서 보듯이 고려초부터 고려말까지 부원군제도가 없었는데 학성부원군은 어디서 온 건가요?
2018.02.12
환***** 조선은 태조 7년(1398)에 친왕자(親王子)를 공(公)으로 삼고, 여러 종친을 후(侯)로 삼고, 정1품(正一品)을 백(伯)으로 삼았다. 태종 1년(1401)은 중국을 모방할 수 없다 해 공(公)을 부원대군(府院大君)으로, 후(侯)를 군(君)으로, 백(伯)을 부원군(府院君)으로 고쳤다.<경남 매일> 2018.02.12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