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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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世箕 |
영어음역 | Yu Segi |
이칭/별칭 | 양수(陽叟),수한(睡漢)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기화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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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
성별 | 남 |
생년 | 1768년 |
몰년 | 1821년 |
본관 | 고흥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양수(陽叟), 호는 수한(睡漢). 허재(虛齋) 유혜원(柳惠源)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유상현(柳象賢)이다.
[활동사항]
유세기(柳世箕)는 가학(家學)으로 한문을 익히고, 성장하자 서당에 나가 경전과 사서(四書)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시문(詩文)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효행의 가풍을 계승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모셨다. 1792년(정조 16) 10월 아버지가 죽자 정성을 다해 상을 치르고 3년간의 시묘를 행하였다.
그 후 어머니가 죽자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군 입암면 등천 뒷산에 안장하였는데, 그 아랫마을 사람들이 매년 수해를 입어서 죽는 사람이 늘어나자 관가에 제소를 하였다. 유세기는 정읍현에 감금된 뒤 형장(刑杖)[몽둥이]에 맞고 피가 흐르자 “부모의 유혈(遺血)을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그 피를 핥고 상처에 생겨난 구더기를 잡아 삼켰다. 이에 정읍현감이 독실한 효성에 감동하여 방면해 주었으나, 장독(杖毒)이 심해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하고 1821년(순조 21)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환산마을에 있는 용강사(龍崗祠)에 향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