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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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瑞順 |
영어음역 | An Seosun |
이칭/별칭 | 안순서(安順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연동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주명준 |
[정의]
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선비.
[활동사항]
안서순(安瑞順)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참봉(參奉)에 이르렀다. 안순서(安順瑞)로도 불렸다. 성격이 맑고 깨끗하며 굽힘이 없었다. 민생을 위해서, 혹은 임금의 잘못된 정사나 권신의 독단적인 행태에 대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상소를 올려 고칠 것을 주장하였다. 1554년(명종 9) 상소하면서 굶주린 백성들이 유리걸식(流離乞食)하는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서 올리자 명종이, “초야에 있으면서 임금을 아끼어 말을 진달했으니 진실로 아름답게 여긴다. 또 민생들이 유리하는 그림을 보니 매우 측은해진다.”고 전교하였다.
1555년(명종 10)에는 권력을 쥐고 있는 문정왕후가 후원을 받는 요승 보우(普雨)의 머리를 벨 것을 상소하였다. “왜변이 일어난 것은 우리 스스로 부른 것입니다. 중의 무리가 편히 앉아 공양을 받고 있는 지금 남정(南征) 나간 병사들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요승(妖僧) 보우의 머리를 베어 남정 나간 장사(將士)에게 사례한다면 삼군(三軍)의 사기가 절로 배가될 것입니다. (중략) 삼가 전하께서는 기강을 확립하고 교화를 밝히는 것으로 적을 막는 근본을 삼으소서.”라고 하였다.
안서순은 1556년(명종 11) 다시 “간신 윤원형(尹元衡)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유관(柳瓘) 등 세 명을 억울하게 죽이고 송인수(宋麟壽)·임형수(任亨秀)를 죽인 것 역시 무죄하니 하늘이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임금이 간신의 말에 따라 사람을 잘못 죽이니 근래에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 상소하였다.
이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윤원형이 안서순을 김인후(金麟厚)에게 연좌시켜 잡아들였으나 안서순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폈다. 결국 안서순은 참형에 처해지고 집은 적몰되었다. 선조 때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의 노력으로 신원되었다.
[묘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두암리 송림산 남쪽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