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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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大湜 |
영어음역 | Gang Daes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관리|교육자|사회사업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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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
성별 | 남 |
생년 | 1878년 |
본관 | 진주 |
대표경력 | 비서감 |
[정의]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창 출신의 관리, 교육자, 사회사업가.
[개설]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87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강대식은 1903년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지냈으며, 1905년에는 6품 승훈랑(承訓郞), 정3품 비서감(秘書監)으로 승차하였다. 한일합방 후 지금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로 물러난 뒤 재산을 일구어 소작인을 1,057명이나 거느릴 정도의 대지주가 되었다. 1919년 암치보통학교를 세운 뒤 다음 해인 1920년에 건축비 및 제반 비품비로 6만 6천 원을 기부하였다.
1922년에는 고창고등보통학교 이사가 되었는데, 당시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하여 오산학교를 인수하는 데 앞장섰다. 1923년 7월 고창고등보통학교에 3만 9600원을 기부하였다. 또한 1938년 회갑을 맞이하여 잔치를 하지 않고 3,000원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이후에도 재해민을 구제하는 데 앞장서 지역 주민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제국군인후원회(帝國軍人後援會) 특별회원, 고창학교 평의원, 고창군농회 통상위원, 면협의원, 조선소방협회지부 평의원, 암치보안조합 조합장 등을 지냈다. 암치보통학교 졸업생들이 힘을 모아 세운 암치사립보통학교기념비에 관련 사실이 기재되어 있으며, 『조선공로자명감』에 의하면, "고상한 품격에 온순하고 공공심이 풍부한 군의 명망가"라고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