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정대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970
한자 丁大秀
영어음역 Jeong Daesu
이칭/별칭 사중(士中),양천(陽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해룡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해룡리
성별
생년 1882년연표보기
몰년 1959년 4월연표보기
본관 영광

[정의]

근대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개설]

본관은 영광(靈光)이며, 자는 사중(士中), 호는 양천(陽泉)이다. 1882년(고종 19)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해룡리에서 태어났다. 감찰을 지낸 정극명(丁克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영희(丁永喜)이다.

[활동사항]

정대수(丁大秀)는 25세 때인 1906년(고종 43) 경의책(經義策)으로 박사 초시에 합격했으나, 동생이 죽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주경야독하며 오직 학문에 열중했다. 1904년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1910년 고군산도에 있는 전우(田愚)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小學)』·『대학(大學)』·『근사록(近思錄)』·『심경(心經)』·『주서백선(朱書百選)』 등을 배우면서 강록(講錄)을 작성하였다.

1912년 전우가 계화도로 옮기자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가 전우가 왕등도로 옮겨 가자 여러 차례 왕등도에 왕래하면서 경전이나 성리학의 의문점을 물었고, 서신을 보내 잘못된 점을 바로 잡기도 하였다. 정대수는 모종관·유영선(柳永善)·권순명 등 동문과 유확연 등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강론하고 시문(詩文)을 지었다. 전우가 세상을 떠나자 1년간 심상(心喪)[상복을 입지는 않으나 상중(喪中)과 같이 처신하는 행위를 말함]하며 근신하였다. 1959년 4월 78세로 죽었다.

[저술 및 작품]

19세 때 「입춘제축인자경(立春題祝因自警)」이란 시를 시작으로 1955년인 74세 때 지은 「독이아(讀爾雅)」·「경제성학십도후(敬題聖學十圖後)」까지 770여 수나 되는 시를 남겼고, 문장도 265편이나 되었다. 저서로 『양천유고(陽泉遺稿)』 7권 4책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