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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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起南 |
영어음역 | Gim Ginam |
이칭/별칭 | 의숙(義叔),경헌(景憲),송계(松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 임해마을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기화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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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 임해마을 |
성별 | 남 |
생년 | 1550년 |
몰년 | 1593년 |
본관 | 김해 |
대표관직 | 사복시정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의숙(義叔)·경헌(景憲), 호는 송계(松溪).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일명 삼현파(三賢派)])의 파조 김관(金管)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축(金軸)이다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80세였던 김여성(金汝聲)의 아버지 김축이 “장남은 종손이므로 노모를 모시고 집안 가솔들을 돌보라.”고 당부하고 두 조카 김두남(金斗南)[1554~1593]·김지남(金志南)[1557~1593) 등을 데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김축은 권율에게 발탁되어 참획(參劃)으로 1593년 1월 곰티재[熊峙]와 배티재[梨峙] 싸움에 이어 2월 12일 행주 싸움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다시 진주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두 조카와 함께 6월 초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다 중과부적으로 밀리자, 김두남·김지남·김천일 등과 함께 6월 29일 남강(南江)에 투신, 순절하였다. 이 기별을 전해들은 김여성은 당질 김덕립(金德立)과 진주성으로 달려가 왜군과 싸우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향년 44세로 순절하였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송현리 327-20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 3등훈으로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에 오르고 『단서철권(丹書鐵券)』을 받았으며, 부조정(不祧旌)을 명받았다. 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