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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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昉 |
영어음역 | Yun Bang |
이칭/별칭 | 가회(可晦),치천(稚川),문익(文翼),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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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
성별 | 남 |
생년 | 1563년 |
몰년 | 1640년 |
본관 | 해평 |
대표관직 | 영의정 |
[정의]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가회(可晦), 호는 치천(稚川). 사용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국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관찰사 황기(黃琦)의 손녀이자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동생이 정민공(靖敏公) 윤흔(尹昕),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이다.
[활동사항]
윤방은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8년(선조 21) 문과에 급제하였다. 홍문관에 들고 평산부사 등을 지냈다. 1601년 아버지 윤두수가 죽자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습봉(襲封)되었다. 병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직하면서 임진왜란 때 불탄 실록(實錄)의 재간에 참여했다. 이어 도승지, 한성판윤, 지의금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위에 불참하고 사직하였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참여하여 예조판서에 등용되었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27년(인조 5) 영의정에 올랐다.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인조를 강화로 호종했으며, 후에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