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366 |
---|---|
한자 | 張悌元 |
영어음역 | Jang Jewon |
이칭/별칭 | 중순(仲順),심곡(深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정의]
조선 시대 구미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본관은 인동. 자는 중순(仲順), 호는 심곡(深谷).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조부는 진평파 파조인 진사 장신손(張信孫)이고, 아버지는 생원 장순(張峋)이다. 어머니는 성산이씨로 진사 이태연(李泰然)의 딸이다.
[활동사항]
아버지로부터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591년(선조 24)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에는 과거 공부를 폐하고 한강 정구(鄭逑)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 남계 이보(李輔), 동리 김윤안(金允安)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김해(金垓)의 막하에 들어가 인동의 정제장(整齊將)이 되었다.
인동이 전란지가 되어 백성들이 고통을 겪게 되자 진휼어사(賑恤御使)에게 글을 올려 양곡을 얻어 백성을 구하였다. 또한 어사의 천거로 도진관(都賑官)이 되어 백성을 위한 진휼을 행하고 순찰사에게 글을 올려 모종을 얻어 황폐한 땅을 개간하였다. 1610년(광해군 2)에는 여러 친우들과 함께 부지암에 서당을 세웠다. 만년에는 선산의 심곡으로 이사하여 정자를 짓고 꽃을 가꾸었다. 오리 이원익이 체찰사로 있을 때 선산부의 교수(敎授)로 추천하였으나 여러 번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학문과 사상]
정구와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만년에는 서애 유성룡, 우복 정경세 등의 칭송을 얻었으며, 그들이 심곡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저술 및 작품]
시문집으로는 3권 1책의 『심곡문집(深谷文集)』이 있다. 김형모의 서문과 장교원의 발문이 있으며, 1926년 간행되었다. 시 152수를 비롯한 시문과 잡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다부동)의 진목정에 묘소가 있다.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되고,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하판리(하판동)에 있는 봉림서원(鳳林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