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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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元吉 |
영어음역 | Yi Wongil |
이칭/별칭 | 이균희(李均憙),이해봉(李海奉),덕경(德卿),도촌(桃村)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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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
성별 | 남 |
생년 | 1893년 |
몰년 | 1920년 |
본관 | 덕수 |
대표경력 | 3·1운동 참여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덕수(德水). 다른 이름은 이균희(李均憙)·이해봉(李海奉),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도촌(桃村). 아버지는 이종매(李種邁)이다. 도개면 도개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사항]
이원길은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가풍에 따라 유가의 규범을 익히며 청운의 뜻을 품고 학문에 전념하여 입신양명을 도모하였으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나라 잃은 한을 품고 전국을 돌면서 나라를 되찾고자 노력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니 뜻한 바 있어 고향에 돌아와서 권오환(權五煥), 김의경(金義景), 전용신, 박희목(朴喜穆) 등 동지를 규합하여 4월 2일 선산읍 장날에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원길은 도개면 조직책으로서 거사 당일 오후 각지에서 모여든 군중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동하였다. 출동한 일본 경찰이 시위군중과 주동자의 가족을 볼모로 잡아다가 고문을 하자 스스로 경찰서에 나아가 잡혀 온 사람들은 석방토록 하였다. 구속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다가 더욱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받아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다가 12월 30일 사경에 이르러 임시 석방되었으나 1920년 2월 20일 생을 마감했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표창, 1991년 8월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