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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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同兪氏 |
영어의미역 | Indong Yu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집필자 | 김용만 |
성씨시조 | 유승단(兪升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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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조 | 유승석(兪承碩) |
[정의]
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유승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개설]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으로 감무를 혁파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1604년(선조 37) 4월 찰리사(察理使) 곽재우(郭再祐)에 의하여 천생산성의 외성이 축조된 후 관방(關防)의 요새로 부각됨에 따라 1605년(선조 38) 7월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의 계청에 의하여 도호부로 승격됨과 동시에 도호부사가 조방장(助防將)을 겸임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명 제98호에 따라 지방제도가 개정되면서 인동은 군(郡; 4등 군)이 되었다가 1914년 3월 인동군 관할 9개 면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1977년 3월 경상북도 구미출장소의 행정 관할로 되었다가 1978년 2월 구미시에 편입되었다.
[연원]
인동유씨의 시조는 유승단(兪升旦)으로, 처음 이름은 유원순(兪元淳)이며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고려 고종의 사부(師傅)를 거쳐 예부시랑(禮部侍郞)·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수찬관(修撰官)·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역임했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참지정사(參知政事)·집현전태학사集賢殿太學士)·수국사(修國史)·판례부사(判禮部事)에 이어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졌다. 『유씨원류동이조(兪氏源流同異條)』에도 시조는 고려시대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유승단이라 하였고, 조선 고종 때 윤조영(尹祖榮)이 쓴 족보 서문에도 인동백 유승단이 시조라 하였다.
[입향경위]
명확하지 않으나 통설은 인동백 문안공 유승단 이후의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오랜 후손인 유승석(兪承碩)을 1세조로 삼아 본관을 인동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