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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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 |
영어의미역 | Virtuous Woma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우인수 |
[정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된 여자.
[개설]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열녀는 혼인 전에 약혼자가 죽었을 경우 그 뒤를 따라 죽은 여자 및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강포자(强暴者)에 항거하는 미혼녀를 가리켰고, 열부는 기혼녀로서 남편의 뒤를 따라 죽은 부인 및 목숨을 끊음으로써 강포자에 항거한 부인을 가리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하였다.
열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귀천 상하를 막론하고 과부가 되면 마땅히 수절하여야 하고 위난을 당하면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의 일이다. 고려 말에 주자성리학이 도입된 후 점차 주자학적 예속의 영향으로 ‘여필종일(女必從一)’이 지상 계율로 권장되고 수절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전통 사회의 가족 제도는 철저한 가부장제 하에서 부모 중심으로 영위되었다. 또한 혼인의 의미가 남녀 간 사랑의 결합이기보다는 부모를 섬기고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데 있었으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모에 의하여 가문 위주로 결정되었다.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남편은 하늘(夫乃婦天)’이라 하여 남편을 위한 정절이 강조되고 열녀·열부가 되는 것이 여자의 도리로 간주되었다.
특히 삼강(三綱) 중에서도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女不事二夫)’는 법도는 남성의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臣不事二君)’는 충절과 표리를 이루는 절의로서, 모든 도덕과 교화의 기본이라 하여 여성의 지상 계율로 장려, 강제되었다. 그리하여 재가(再嫁)는 귀천을 막론하고 큰 죄악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시대에는 많은 열녀가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여성에게 가해진 규제와 장려 정책은 외출 및 남녀 교제에 대한 엄격한 제한, 음행에 대한 가중된 엄벌, 삼강행실(三綱行實)의 거듭되는 반포 및 이의 교화(敎化), 열녀문(烈女門)을 내려 표창하는 등 다양하게 시행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1485년(성종 16)에 반포된 ‘재가녀자손금고법(再嫁女子孫禁錮法)’이었다. 즉 재가녀의 자손은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게 하여 관로(官路)를 막는 것인데, 재가를 막는 데 철저하게 효과적인 방도였다. 일련의 조치로 양반 부녀들의 수절 풍습은 널리 보급되고 그 양상은 세월이 흐를수록 상민층에게까지 퍼져나갔다. 부부간의 정은 호혜 관계에 기초한 것이지만, ‘열부(烈夫)’는 없어도 ‘열녀’는 쏟아져 나오고, 열녀가 나오면 그것이 또한 가문의 자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풍양속의 본보기로 높게 평가되었다.
절사(節死)의 행동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 여인들의 통념에서는 하나의 미덕 또는 도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열녀들이 행하는 절사의 행동은 표면적으로는 죽은 남편에 대한 정을 표현하는 것이기는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열녀가 남성 중심의 가족 제도의 희생물이었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례]
구미 지역에서 열녀로 인정되어 포상된 이는 무려 55명에 이르렀다. 위로는 양반의 부녀에서 아래로는 노비의 아내에 이르기까지 전 신분에 걸쳐 존재하였다. 그들의 사연도 다양한데,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 시의 참화와 관련되어 표창된 경우가 단연 많았다. 몇 가지 사례만 들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열녀 약가는 왜구에 잡혀간 남편을 8년 동안 한결같이 기다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재회한 경우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도 실려 후대의 귀감이 되었다. 임진왜란 시에 왜적에 항거하며 꾸짖다가 피살된 강씨, 왜적에 피살된 남편을 따라 목을 매 죽은 김씨, 난을 피해 숨어 지내다가 발각되자 욕을 당하기 전에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변씨 등이 있었다. 열녀 향랑은 철없는 남편으로부터 심한 고통을 당하고, 시댁과 친정에서조차도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못에 투신하여 죽음을 선택한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이상한 병에 걸려 신음하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허벅지를 도려내어 쇠고기라고 속여 먹게 하여 병을 완쾌시킨 강씨의 사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