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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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佐命旌閭碑 |
영어의미역 | Gate Monument Erected to Praise Conduct of Jeon Gwamyeong |
이칭/별칭 | 전좌명효자비(田佐命孝子碑)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 1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광수 |
성격 | 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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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규형비(圭形碑) |
건립시기/일시 | 1678년 |
관련인물 | 전좌명 |
재질 | 사암(砂巖) |
높이 | 93㎝ |
너비 | 37㎝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 141 |
소유자 | 연안전씨 종중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좌명 효자정려비.
[개설]
전좌명은 연안인(延安人)으로 자는 충언(忠彦), 호는 성암(性庵)이며, 중정대부삼사좌윤 전목(田霂)의 증손자이다. 관직은 광흥창주부로,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을 추증받았다. 전좌명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의 상을 당하였을 때 6년간 시묘를 하였다.
후에도 계속하여 삭망(朔望)때 묘소를 찾아갔는데, 향합(香盒)을 잊어버리고 와서 정성이 부족함을 한탄하며 통곡하던 중 백오(白烏)가 향합을 물고 왔다. 후일 명종이 “白烏御含香盒南山代田民(흰까마귀는 향합을 물어오고 남산은 밭과 백성을 대신한다)”라는 어제시판(御製詩板)을 하사하였다. 전좌명의 외손녀가 성종의 왕비인 정현왕후이며, 중종(中宗)의 모친이다. 전좌명의 효행 사실과 증직으로 1472년(성종 3)에 정표(旌表)되어 수비(竪碑)하였다.
[형태]
연안전씨의 집성촌인 무을면 무이리 동구의 비각 안에 효자정려비와 편액이 잘 보존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93㎝, 너비 37㎝, 두께 14.5㎝의 상부에 귀접이를 한 규형(圭形) 석비로, 재질은 사암(砂巖)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 ‘효자증우의정전좌명지려(孝子贈右議政田佐命之閭)’라 새겨져 있고, 뒷면의 건비 연대는 ‘숭정기원후무오윤월일(崇禎紀元後戊午閏月日)’이며, 서체는 해서(楷書)로 각자되었다.
[의의와 평가]
무을면 무이리 일대에 세거한 연안전씨 문중 전좌명의 효행 사실과 104세로 장수한 생애, 명종의 어제시(御製詩)가 역사적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어 그 가치와 의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