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194 |
---|---|
한자 | 賢巖書院 |
영어음역 | Hyeonam Seow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42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미연 |
성격 | 서원 |
---|---|
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424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
[개설]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죽정(竹亭) 장잠(張潛)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장잠은 자(字)는 호원(浩源), 호는 죽정(竹亭)으로 조선 중종 및 명종 때의 유학자이다.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1531년(중종 26)에 진사가 되었으며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 존경받았다.
현암서원은 1692년(숙종 18) 9월에 현암사우(賢巖祠宇) 2칸을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 후 1761년(영조 37)에 정당(正堂) 4칸, 동서재 각 3칸, 정문 3칸 등을 건립하여 현암서원이라 하였다. 전주인 최경식(崔慶湜)의 「현암서원 상량문」과 현감 김수담(金壽聃)의 「봉안문」, 첨지중추부사 장지학(張趾學)의 「상향문(常享文)」이 있었다.
[변천]
1692년(숙종 18) 9월에 인동(仁同) 증봉산(甑峰山)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였고, 1698년(숙종 24) 8월에 화동(花洞)으로 이건하였으며, 1739년(영조 15) 3월에 이현암(二賢巖)의 동쪽으로 다시 이건하여 1761년(영조 37)에 사림의 공의(公議)에 따라 현암서원으로 승제되었다.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그 유지만 남아 있었다가 1993년 5월에 숭도사와 강당 5칸, 정문 3칸을 그 유지에 복원하였다.
[형태]
3칸 규모의 산형대문(山形大門)인 보인문(輔仁門)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강당이 정면으로 자리하고, 강당 뒤에는 내삼문과 사당인 숭도사(崇道祠)가 별도의 공간을 이루며, 동일 축으로 배치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일반적인 서원 배치 양식을 취하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사당인 숭도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인데,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개방된 퇴칸을 두었으며 내부는 통칸으로 구성하였다. 서원 아래에는 장잠이 강학하던 죽림정사(竹林亭舍)가 있고, 서원 입구에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과 강론을 하던 이현암(二賢巖)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