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239
한자 宗敎
영어음역 Religion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강룡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

[불교]

구미 지역은 고대부터 불교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오산 일대에는 현존하는 수 개의 사찰과 함께 그 정상과 산록에 남아 있는 폐사지(廢寺址)만도 20여 개에 이른다.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는 아도화상의 연기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도리사, 신라 탑의 웅대함을 보여주는 죽장사 오층석탑,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 등 찬란했던 불교 유산들이 적지 않다.

구미 지역은 신라 불교의 초전지로 주목을 받는 곳이다.『삼국사기』,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일선지』 등에는 신라 불교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을 일선군 즉 지금의 선산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대의 기록과 현지의 유물·유적,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전설 등을 종합할 때, 현재의 도개면 도개2리 일대가 신라 불교의 발상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아도화상이 거주했다는 모례의 집터와 그때의 우물로 추정되는 우물, 또한 도리사아도화상 좌선대, 아도화상 사적비, 조사전과 초상화, 석탑, 그리고 모례가(毛禮家) 유적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가람지와 석탑 등을 들 수 있다.

특기할 것은 1976년 3월 고아읍 봉한리에서 발견되어 국보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이 모례의 유적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시대는 불교가 국교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을 때이므로 불교 신자들이 이곳을 순례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선산 지역은 신라시대에는 불교의 발상지로 이름을 떨쳤지만, 조선시대에는 영남학파의 단초가 마련되어 성리학의 번성지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불교가 위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미 지역은 불교 도래지인 도개면 일대가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을 뿐 불교 성지로의 의미는 위축된 상태이다. 본사의 규모를 갖춘 사찰도 없고, 조계종단에 속한 사찰의 경우 대부분 김천 직지사의 말사들이다. 그 중에서 전통 사찰로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는 도리사·대둔사·수다사·보천사 등이 있고, 국보급과 보물급 유물 몇 점이 당시 화려했던 불교를 전해주고 있다.

현재 조계종·천태종·태고종 등 각 종단에 소속된 사찰들이 사암주지연합회를 결성하여 불교 중흥의 의지를 갖고 불교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간혹 국제적인 불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특히 도개면 도개리에 소재한 아도모례원은 아도화상의 불교 전래 사실을 입증하고 그 유적을 확인하여 한국 불교의 성지로서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구미 지역에 소재한 사찰 및 불교단체들로는 도선사·원각사·법륜사·영명사·보현사·용마사·봉불사·죽림사·보원사·수다사·문수사·원흥사·모례원·자비원·대둔사·도리사·보천사·동화사·법천사·문수사·동형사·환희사·봉서사·원향사·쌍룡사·불교포교원·법인사·보광심인당·구인사신도회·영상불원·아미사·도심사·금강사·해운사·남화사·약사암·법성사·금룡사·황룡사·봉죽사·송원사·금강선원·지원심인당·천룡사·전광사·천해사 등이 있다.

[개신교]

1901년 선산군 고아면 괴평동에 장로교회가 설립되어 미국인 선교사 전해리가 들어와 전도하였다. 당시 전도하기가 무척 어려워 수년을 전도해도 신자는 몇 명에 불과하였다. 1901년에 구미상모교회, 1904년에 선산읍교회가 설립되었다. 박해리 선교사는 선산읍교회에서 전도에 힘을 쏟았다. 뒤이어 방해법 목사가 순회 전도에 합류하기도 했다. 일제가 개신교를 탄압하였지만 개신교 세력은 급격하게 신장하였다. 그러다가 선산에서부터 교리 대립이 시작되어 장로교는 총신파(총회신학계)와 한신파(한국신학계)로 분열되었다. 총신파는 종래의 전통적 교리를 지킬 것을 주장한 반면 한신파는 자주적이며 시대에 맞는 교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각처의 교회가 양립하게 되었고, 감리교·성결교·침례교·통일교 등 수많은 개신교 교파들이 등장하였다.

현재 구미시에 소재하는 교회로는 선산제일감리교회, 선산충무교회, 순복음선산교회, 선산남교회, 선산제일교회, 생곡교회, 봉곡교회, 내고교회, 습례교회, 신기교회, 선산중앙교회, 서부교회, 선산읍교회, 북산교회, 교리교회, 원동교회, 사랑성서침례교회, 선산교회, 원호성결교회, 천호성결교회, 봉한교회, 신촌교회, 경서제일교회, 고아읍교회, 고아동산교회, 미래교회, 서문교회, 괴평교회, 고아중앙교회, 연흥교회, 북부교회, 송림교회, 문성교회, 관심교회, 구운교회, 다평교회, 항곡교회, 원호제일교회, 대망교회, 진격교회, 황상교회, 무수교회, 안곡교회, 무등교회, 오가교회, 오가제일교회, 무을중앙교회, 무이교회, 옹곡교회, 무을교회, 백자교회, 원동교회, 초곡교회, 옥성교회, 구봉교회, 대원교회, 덕촌교회, 동산교회, 도개순복음교회, 중앙교회, 신곡교회, 송도교회, 해평교회, 문량교회, 산양교회, 새빛교회, 일선교회, 산동교회, 송백교회, 임봉교회, 명곡교회, 상림교회, 여남교회, 오로교회, 장천교회, 송정교회, 구미제일감리교회, 성광교회, 신일교회, 동산교회, 제칠안식교회, 구미교회, 주성교회, 성문교회, 서교회, 왕국회관, 구미감리교회, 구미순복음교회, 구미영광교회, 구미영락교회, 구미침례교회, 왕성교회, 구미예향교회, 지산교회, 양문교회, 만민제일교회, 구미북교회, 도량제일교회, 목양교회, 구미대교회, 성민교회, 애린교회, 도량선교원, 동녘교회, 양무리교회, 구미성은교회, 선주교회, 한빛교회, 새구미교회, 송축교회, 복음제일교회, 평강교회, 하은교회, 원남교회, 말일성도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구미중앙교회, 동인교회, 구미교회, 서현교회, 형곡제일교회, 구미형곡교회, 구미제일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중부교회, 은총교회, 구미형곡교회, 갈보리교회, 서머나교회, 하나님의교회, 형곡남교회, 신시동교회, 안디옥교회, 원평교회, 서부교회, 형곡교회, 서일교회, 반석교회, 명덕교회, 성산교회, 중앙성결교회, 영은교회, 명성교회, 순복음교회, 진주만교회, 금오장로교회, 주안교회, 구미남교회, 시민교회, 중앙교회, 구미세일교회, 주사랑교회, 신평교회, 비산교회, 구미동산교회, 강변교회, 제자교회, 하나로교회, 금오교회, 예성교회, 은혜교회, 상모교회, 동광교회, 사곡대교회, 사곡교회, 구세군구미영문교회, 주사랑성결교회, 총은교회, 남구미교회, 구미남부교회, 오태동교회, 구미만민교회, 영남제일교회, 화목제일교회, 삼서광교회, 온누리교회, 구미동문교회, 구미등대교회, 소망교회, 중앙교회, 화평교회, 신원교회, 인동교회, 인의교회, 황상교회, 구미제일교회, 구미강동교회, 구미하강교회, 옥계제일교회, 화평성결교회, 옥포교회, 금전교회, 옥계교회, 구포교회 등이 있다.

[천주교]

구미의 천주교회는 원래 왜관교구의 관할이었으나 1986년 1월 30일부터 대구교구 관할로 바뀌었다. 구미시에 있는 천주교회로는 원평본당(원평성당)·인동본당(인동성당)·신평본당(신평성당)·형곡본당(형곡성당) 등이 있으며, 원평본당 관할로 임은공소·송림공소·아포공소가 있다.

1. 원평본당(원평성당)

1800~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문경새재와 화령을 거쳐 남하한 신자들이 1827년 영남 지역에 68개의 신자촌을 만들 때 상주에서 대구 간에 터를 잡은 곳이 여진(余津)이다. 이 여진에서 시작된 신앙의 불씨가 송림공소를 이루었다. 1906년에는 선산군 고아면 송림동 102번지에 목조 와가(瓦家)를 구입하여 공소로 사용했고,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옮긴 끝에 지금의 송림동 467번지에 오늘의 현대식 건물을 마련하게 되었다. 송림공소는 1948년 구미공소로 승격하고 1956년 12월 30일에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79년 9월 26일 치명복자 축일에 구미본당이라 통칭하던 구 본당을 원평본당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구미시 원평동 435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초대 주임신부는 어 케롤드이다.

2. 인동본당(인동성당)

인동본당은 1905년 금전동 가곡에 거주하는 방씨와 공씨들이 신앙을 받아들여 가실공소로 출발한 것이 그 시발이다. 교통 문제로 1947년 금전동에서 황상동으로 공소를 옮기면서 왜관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1956년 현 본당 부지에서 공소 건물을 지어 인동공소로 되고, 1979년 1월 1일 인동본당으로 승격하였다. 구미시 인의동 312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초대 주임신부는 허창수(헤르베르트)이다.

3. 신평본당(신평성당)

구미시는 공업단지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신자 수도 함께 늘어나서 기존 본당의 시자들을 분리하게 되었다. 1978년 신평동 54번지[야은로45길 13]에 3,762㎡의 땅을 매입하여 새 성당을 건축하고 1979년 9월 26일 치명복자 축일에 구미본당에서 분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구미시 신평1동 54번지[야은로45길 13]에 위치하고 있다. 초대 주임신부는 김영근(베다)이다.

4. 형곡본당(형곡성당)

대지 2,202㎡평에 건평 2,435㎡으로 1990년 2월 11일 착공하여 같은 해 12월 18일 준공, 같은 해 12월 23일 원평본당에서 분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미시 형곡1동 13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초대 주임신부는 허연구(모이세)이다.

이 밖에 현재 구미시에 소재하고 있는 천주교회의 본당으로는 선산성당·해평성당·도량성당·봉곡성당·상모성당·고아성당 등이 있고, 천주교회 공소로는 연흥공소·봉한공소·고아공소·신촌공소·옥성공소·산동공소·장천공소 등이 있다.

[유교]

종교라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세에서의 영원한 삶에 관한 길을 제시해야 하는데, 유교는 공자의 학문 그 중에서도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경전으로 하는 이승에서의 실천 도덕으로서 내세에 관한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유교를 종교로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유교는 하늘과 공자와 조상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일본·중국에 크게 영향을 미친 종교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근래에는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무교(無敎)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불교나 기독교가 아니면 고유의 무속 신앙과 구별하지 않고 그냥 ‘유교’라고 대답할 정도로 유교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종교이다.

사전에는 유교를 유학과 같은 용어로 정의하고 있는데, 구미 지역은 예로부터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학이 왕성했던 고장이다. 금오산 입구에 채미정을 지어 그 이름을 기리고 있는 길재, 선산의 김숙자·김종직·김굉필·하위지·정붕·박영, 인동의 장현광, 구미의 이맹전·허위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신종교]

구미 지역에서 신종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종교로는 원불교, 한국SGI, 대순진리회, 여호아의 증인, 천리교 등이 있다. 원불교는 불교를 근간으로 하고 창시된 신흥 종교이다. 한국SGI는 불법의 근본이념인 생명 존중 사상을 실천하고 각 개인은 물론 국가 번영과 세계 평화 실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일본에서 창시되었다.

대순진리회는 민족 종단을 자처하고 있고, 여호와의 증인은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면서 핵심 부분에서 기독교와는 성경 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는 종교이다. 천리교는 1836년 일본에서 교주 나카야마 미키[中山美枝]가 나라켄[奈良縣] 뎬리시[天理市]에서 창시하였으며, 일본의 민족 종교로서 천리왕명(天理王命)을 주신(主神)으로 삼고 일본 신도의 십주신(十柱神)을 신앙 대상으로 삼고 있다.

원불교의 경우, 1968년 3월 17일 원불교 구미교당이 개설되어 1988년 12월 6일 송정동 488번지[신시로10길 87-14]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대 교무는 성정재이다. 성정재 교무는 6개월 정도 재임하였고 실제적인 초대 교무의 일은 장원심 교무가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