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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리 동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620
한자 道中里洞祭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Dojung-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지도보기
집필자 석대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1월 14일(음력) 자정
의례장소 마을 뒤쪽 당집|마을 입구
신당/신체 당집|석상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에서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산동면 도중리는 도리미, 아랫도리미, 탑마, 윗도리미로 자연부락이 구성되어 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도임(道林)과 중평(中坪)의 글자를 모아 도중으로 호칭하였다. 도중리 동제는 음력 정월 보름에 윗도리미의 당집인 동신사에서 유교식 절차에 따라 지내고, 마을 입구 ‘골매기(돌미륵)’에서는 간단히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도중리 사람들은 이를 ‘동사신 모신다’ 또는 ‘골매기 모신다’라고 한다.

걸인 노총각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는 도중리 동제는 유교식으로 하며, 구미 지역에서는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내고 있다. 마을에는 50대를 중심으로 15명 정도의 청년회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은 마을의 대소사를 치르는데 주체적인 역할을 하며, 도중리 동제에도 당연직으로 청년회장이 참여한다. 1993년 구미시가 구미문화원을 통하여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규모도 커졌지만, 마을 자체에서도 동제를 위한 동답 600평이 있을 정도의 경제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도중리는 경주이씨가 먼저 정착하고, 경주최씨가 들어왔으나, 현재 경주최씨가 13대를 이어 오는 동성마을이다. 도중리 동신인 골매기 석상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마을에서는 걸인 총각이 얼어 죽어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내용을 보면, “먼 옛날 한 청년이 도산동의 ‘절골’을 찾아 왔다가 얼어 죽었다. 이 총각이 마을의 상노인에게 현몽하여, ‘내가 동제를 위해 줄 것이다.’라고 하여 총각을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총각이 마을에 온 시기는 조선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이 마을 형성 시기와도 비슷하니 동제의 역사 또한 마을의 형성 시기와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마을 제사는 총각의 원혼을 달래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제삿날 걸인들이 많이 오면 모두 먹여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는 이 마을이 주변에서는 부자마을로서 최씨들이 많이 베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 제사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기반과 동제를 위한 전답을 가지고 있는 것 등이 동제를 지속하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제의 제관을 이장, 새마을지도자, 청년회장, 노인회장이 맡는 것, 한복에 유건을 하지 않고 양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것, 약 10여 년 전부터 마을청년회에서 주도적으로 제사를 이끌어 가는 것 등의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도중리 제당은 윗도리미에 ‘동신사’라고 하는 당집이 있고, 마을 입구 산자락에 ‘골매기’ 돌미륵이 있다. 동신은 ‘골매기’라 하며, 당집과 마을 입구에 각각 모셔져 있다. 당집은 두 칸으로 오른쪽 큰방에 높이 1m 정도로 뒷머리를 땋은 돌미륵(골매기)이 좌정하고 있다. 왼쪽의 작은 방에서는 제관들이 제사 때를 기다린다. 마을 입구 돌미륵의 몸체는 문관석의 형상을 하고 있고, 얼굴은 비슷한 사례가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얼굴에 그린 눈썹과 눈, 그리고 수염 등은 매우 익살스럽다. 또 한편으로는 근엄한 분위기도 있다. 마을 입구의 동신상은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절차]

마을에서는 정초가 되면 마을 제사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 제관을 선출하는 일이다. 제관은 숙제관 1명, 제관 1명, 축관 1명 모두 3명이다. 초사흗날 생기복덕한 자를 뽑아서 제관이 정해지면 그날부터 ‘정성’을 드리지만, 요즈음은 음력 1월 10일에 선출한다. 제관은 마을 사람들과 샘을 따로 쓴다. 정성을 잘못 드리면 피해를 보는데 아이가 죽은 집, 불이 난 집,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집들이 있었다. 생기를 뽑을 때는 30대도 제관이 되었다. 현재 당연직 제관은 이장, 새마을지도자, 청년회장, 노인회장이며, 이들 중 상주나 상복을 입은 사람은 제관을 할 수 없다.

제수를 장만하기 위해 당일에 인동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과거에는 해평시장으로 다녔다. 장을 보러 갈 때는 새벽에 딴 손님이 오기 전에 먼저 장을 본다. 제물은 밥·국·김·조기·백짐(백설기) 한 시루·돼지머리·탕·문어포·대구포·대추·밤·곶감·배·사과·귤·유과·막걸리 3잔 등이었다. 돼지머리는 요즈음 올리는 것이고, 과거에는 닭을 한 마리 올렸다.

제사는 참신→ 초헌(독축)→ 아헌→ 종헌→ 소지 올리기→ 음복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참신·초헌과 독축·아헌·종헌은 모두 유교제사의 형식과 절차이다. 초헌은 첫 술잔을 올리는 초헌관이 술잔에 술을 받아 골매기 앞에 올리고 절을 두 번 한다. 독축은 초헌관이 초헌을 올린 후,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독축은 신에게 인간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매년 일시와 초헌관의 성명만 바꾸어 쓰며, 그 외의 내용은 항상 동일하다.

소지 올리기는 아헌관과 종헌관이 각각 초헌과 같은 방법으로 술을 올린 후에 행한다. 축관이 마을 주민의 호주 명단을 차례로 불러 주면 숙제관이 “○○○(호주 이름)네 농사 잘 되고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축원을 하며 종이를 불에 살라서 그 재가 공중으로 오르게 한다. 헌관 이하 70여 명의 각 호주의 소지를 올리고, 가축들의 안녕을 위한 소지도 올렸다. 참례한 장년층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의례적으로 구미문화원장·구미시장·구미경찰서장 등 외부인의 소지도 올렸다. 아침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한다.

[축문]

유세차○○병인삭○○일 갑진 유학 ○○○(維歲次○○丙寅朔○○日 甲辰 幼學 ○○○)

감소고우토지지신 도산위동실뢰상백호절비천재태계(敢昭告于土地之神 道山爲洞實賴床百戶竊比千載泰階)

부자자효형우제공독첩성장경필점양노이무양(父慈子孝兄友弟恭讀輒成章耕必占穰老而無恙)

유역선줄잉칙생남생칙기로수한불입질역갈침(幼亦善茁孕則生男生則期老水旱不入疾疫曷侵)

육축번식오곡등임혹가혹무재흔재내세연상원(六畜蕃息五穀登稔或歌或舞載欣載奈歲涓上元)

축택길인물박성격연강여강가기호수백배 상향(祝擇吉人物薄誠擊連降如降家祈戶壽百拜 尙饗)

[현황]

도중리 동제는 1993년부터 구미시의 재정적 지원으로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도중리는 무엇보다도 경주최씨의 동성마을로 동제를 전승할 만한 기본적인 경제적 기반과 인적 자원, 당집과 마을 입구의 골매기 동신상과 관련한 전설 등 동제를 전승할 수 있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제관의 선출 문제나 제사 비용의 문제 등은 마을청년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해결하고 있다. 또한 제사를 위한 동답 600평과 구미시의 지원은 앞으로 도중리 동제가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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