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A03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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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재호 |
전주최씨들은 해평 토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번성한 가문 중의 하나이다. 입향조는 휘(諱) 수지(水智)이다. 검재 최수지는 현풍현감, 비안현감을 거쳐 세조 대에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이 되었으며, 해평 강산의 명승을 좋아하여 해평김씨 김영발(金英發)의 손자 사위가 되어 처향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전주최씨 족보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字)는 윤보(潤甫) 호는 검재(儉齋) 증도승지(贈都承旨) 경암(敬庵) 허조(許稠)의 문인(門人) 단종조(端宗朝) 1453년 계유(癸酉) 진사로서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로서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갔을 때 명나라로부터 들여온 문장정종(文章正宗) 및 주자서안(朱子書案)과 용연(龍硯)은 해평에 전해지고 있다.
배(配) 숙부인(淑夫人)은 함평모(牟)씨로 묘는 실전(失傳)하고 도산단향(道山壇享)하다.
공은 비안현감 부임 도중에서 취처복지인거(娶妻卜地因居)하였다. 묘는 해평 조계산(曺溪山) 아래 오리동(梧里洞) 간좌(艮坐).
배(配) 숙부인(淑夫人) 해평김씨는 교도(敎導) 유사(由舍)의 여(女). 고려개국공신 훤술(萱術)의 후손이다. 묘는 공(公) 묘(墓) 아래 간좌(艮坐).
공이 해평으로 이거한 것은 선산이 명현을 많이 배출한 추로지향(鄒魯之鄕)이고 해평의 강산지승(江山之勝)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나 공이 문성공(文成公) 7세 주손(冑孫)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믿어진다. 장자(長子) 휘(諱) 이식(以湜)은 문과에 급제하고 관이 수령에 머물렀으며 진주에서 함안으로 이거하고 전후 7대가 배위와 더불어 묘가 실전(失傳)되었음도 역시 당시 무슨 사연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공은 해평에서 서거(逝去)하여 해평에서 봉사(奉祀)한다.
족보의 기록에 의하면 검재공은 둘째 부인 해평김씨에게 장가를 들면서 해평으로 삶터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집안의 주손으로 삶터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족보에서도 언급하듯이 나름의 충분한 사연이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