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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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臥龍-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복웅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에 있는 전통 마을.
[개설]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와룡마을은 조선 시대에 이씨 집성촌으로 형성되어 현재에도 고유한 기풍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 마을이다.
[명칭 유래]
고봉산에서 내려와 이룬 줄기 끝에 해당하는 낮은 구릉 일대의 모양이 용이 누워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와룡(臥龍)”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용이 누워 있는 곳이 명당터라 전해지지만 현재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형성 및 변천]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와룡마을은 조선 시대 세종 때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李)씨가 처음 이주하면서 생겨났다는 설과 고려말 인동 장씨 할머니가 금강을 넘어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1914년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 운회리가 관할하는 마을로 편제되어, 1995년 1월 1일 옥구군과 군산시가 통합되면서 운회리가 군산시의 관할을 받게 되었다.
[자연 환경]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와룡마을의 북서쪽으로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에서 위치한 고봉산 줄기가 마을 좌우로 낮은 구릉을 만들고 있다. 와룡마을이 구릉 끝에 있는 셈이다. 마을 주변으로 구릉과 구릉 사이로 벼농사가 이뤄지는 평탄한 경작지가 나타난다.
[현황]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와룡마을에는 2013년 현재 약 120여 세대의 이씨들이 모여 살고 있다. 와룡마을은 형성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문중간 고소나 고발 사건이 없다고 한다. 조선 시대 세종 때 80세 된 노인이 100세 된 노모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서 재롱을 부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 일로 세종은 “가전충효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가문 대대로 충효를 전하고, 세세로 인함과 경함을 지켜라]이란 친필을 보냈고 이씨들은 이 문구를 가훈으로 전하고 있다.
이씨 집성촌이었던 와룡마을에서는 문중에서 가장 항렬이 높은 문장 할아버지의 말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자랑한다. 문중의 순수함과 정의로움도 또 하나의 자랑거리다. 와룡마을은 군산의 유명한 야당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군부 독재 시절 내내 야당을 응원했던 것이다. 와룡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교육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이라는 것이다. 전현직 고위급 교육자만 해도 20여 명에 이른다. 이 마을에서 교육자가 많이 배출된 이유로 어머니들의 높은 교육열이 꼽힌다. 이씨 문중 부인 대부분은 광주리에 채소를 내다 파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자녀 교육을 최우선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중세 전 군산 사범 학교 교장의 노력도 교육자 마을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현재에도 와룡마을에는 이씨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