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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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余方里土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
시대 | 고대/고대,고려/고려 |
집필자 | 유영춘 |
소재지 | 여방리 토기 가마터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수심 마을 서남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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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여방리 수심 마을 서남쪽에 있는 토기 가마터.
[개설]
여방리 토기 가마터는 1985년 군산 대학교에서 『옥구의 지방 문화 유적』을 간행하기 위해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유적의 보고가 최초로 이루어졌다. 당시의 지표 조사에서 수습된 유물을 통해 이곳에 토기를 생산하던 가마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여방리 토기 가마터는 수심 마을을 서남쪽에서 감싸고 있는 야트막한 야산[해발 49m]의 북동쪽 사면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현재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군산 대학교에서 발행한 『옥구의 지방 문화 유적』과 『문화 유적 분포 지도』에 지표 조사 내용만 소개되어 있어, 유적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만 알 수 있다.
[현황]
가마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 수풀이 우거진 야산의 기슭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구가 상당 부분 훼손되었기 때문에 현재 가마의 정확한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주변에서 수습되는 유물을 통해 이곳이 가마터임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
여방리 토기 가마터에서는 다량의 토기편과 조업 시 생성되는 가마 똥이 수습되었는데, 특히 토기편은 고려 시대 토기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삼국 시대 토기편도 일부 확인된다. 소량이기는 하지만 수습된 삼국 시대 토기편을 통해 유적의 운영 시기가 삼국 시대까지 올라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토기 가마터는 생활 필수품인 토기를 생산하는 유적이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생활 문화를 뚜렷이 보여주는 유적 중의 하나이다. 여방리 토기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는 수심 마을 주변에는 고분떼, 유물 산포지와 같은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는 유적들이 다수 자리하고 있는데, 여방리 토기 가마터는 주변에 자리한 유적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향후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 지역의 문화상을 다차원적으로 밝힐 수 있는 좋은 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