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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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余方里藍田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유영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차: 1994년 11월 25일~1994년 12월 24일[30일간]|2차: 1995년 11월 20일~1995년 12월 30일[41일간] - 여방리 남전 유적1A 국립 전주 박물관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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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여방리 남전 유적1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363-1 일원 |
성격 | 유적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에 자리한 청동기·초기 국가 시대 유적.
[개설]
전주 박물관은 서해안 고속 도로 공사 구간 중 서천-군산 구간에 분포하는 문화 유적에 대하여 연합 발굴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이에 남전 마을의 유적을 조사하게 되었다. 유적은 총 두 번에 걸쳐 조사되었는데, 1차 조사는 1994년 11월 25일부터 12월 24일까지, 2차 조사는 1995년 11월 20일에서 12월 30일까지 실시되었다.여방리 남전 유적 1에서는 마한 시대 주거지와 조개더미가 조사되었다.
[건립 경위]
여방리 남전 유적 1의 건립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유적의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위치]
금강 하구에 있는 오성산(五聖山)[해발 228m]의 동쪽 줄기에는 해발 7.5m의 나즈막한 저구릉이 있는데 이 구릉의 주변으로는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여방리 남전 유적 1은 바로 이 평야 지대에 위치한다.
[형태]
마한 시대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내부에는 노지나 부뚜막과 같은 시설을 하지 않았다. 1호 주거지에서만 연질옹(軟質甕)과 시루, 천발(淺鉢)과 같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개더미 유적은 후대에 퇴적된 교란토로 덮혀 조개더미가 지상에 노출되지 않은 상태였다. 1차 조사 시 트렌치조사 과정에서 패각층이 확인되어 2차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조개더미는 20×15m의 범위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대부분의 패각은 퇴적토와 함께 형성되어 ‘혼토 패각층’의 양상을 이루고 있다.
각층에서는 토기편이 다량으로 출토되었으며, 이와 함께 골각기와 동물 유체 그리고 철기편이 출토되었으며 패각층을 이루고 있는 패각류도 굴 종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외 백합, 고동 종류도 확인되었다. 이조개더미는 청동기 후기~6세기까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재 공사가 완료되어 여방리 남전 유적 1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여방리 남전 유적 1에서는 청동기·초기 국가 시대 유적이 확인되었다. 현재까지의 지표 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군산 지역 내의 조개더미는 총 200여 개소로 이러한 수량은 우리나라 조개더미의 1/3가량을 차지한다. 이렇게 다량의 조개더미가 자리한다는 것은 일찍이 군산 지역 사람들이 새만금 지역의 내륙 수로를 기반으로 하여 역동적인 해양 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방리 남전 유적 1에서 조사된 조개더미 역시 군산 지역 내의 다른 조개더미와 마찬가지로 우리 군산 지역의 역동적인 해양 문화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