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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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余方里藍田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유영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차: 1994년 11월 25일~1994년 12월 24일[30일간]|2차: 1995년 11월 20일~1995년 12월 30일[41일간] - 여방리 남전 유적 2 서해안 고속도로 발굴 조사단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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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여방리 남전 유적 2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346-3 일원 |
성격 | 유적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에 있는 초기 국가·고려말~조선 초기 유적.
[개설]
여방리 남전 유적 2는 서해안 고속 도로 개설 구간 부지 내에 자리하는 것으로 지표 조사를 통해 드러난 유적의 성격과 유적의 범위, 연대를 파악하기 위하여 총 2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1차 조사는 1994년 3월1일부터 4월 4일까지 35일간 실시되었으며, 2차 조사는 1차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다 확대된 발굴 조사의 필요성이 지적되어 1994년 12월 9일부터 1995년 3월 5일까지 조사가 실시되었다. 여방리 남전 유적 2에서는 고려 시대~조선 초기 건물지와 초기 국가 시대 유물 포함층, 조개더미가 확인되었다.
[건립 경위]
여방리 남전 유적 2의 건립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유적의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위치]
금강 하구에 있는 오성산(五聖山)[해발 228m]의 동쪽 줄기에는 해발 7.5m의 나즈막한 저구릉이 있는데 이 구릉의 주변으로는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여방리 남전 유적 2는 바로 이 평야 지대에 위치하며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348-3 일원에 해당한다. 여방리 남전 유적 2의 동북쪽에는 여방리 남전 유적 1이 위치하고 있다.
[형태]
여방리 남전 유적 2에서는 조개더미가 일부 확인되었지만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시굴 조사를 실시하지 못하였다.
조선 시대 유구로는 건물지 2동과 부속 시설인 축대 시설, 온돌 시설, 작업공(作業孔) 등이 확인되었다. 조선 시대 유구는 기존의 마한 시대 문화층을 파괴하고 설치된 것으로 후대에 밭으로 경작되면서 대부분 훼손되어 그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건물지 주변에서는 도자기편과 기와편이 수습되었다.
기와는 평기와와 수키와가 출토되었는데 평기와는 사선문(斜線文)을 타날한 후 물 손질을 하였으며 수키와는 창해파문(滄海波文)과 삼각집선문(三角潗線文) 계통의 문양이 타날되어 있다. 도자기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이 있으며 기종으로는 대접, 접시, 병, 제기 등이 있다.
청자는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해당되는 순청자와 인화청자, 상감청자가 출토되었다. 또한 조선 시대인 15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초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와 백자가 함께 출토되었다.
이로 보아 이 건물지는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인 15세기 중엽 내지 16세기 초기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현재 공사가 완료되어 여방리 남전 유적 2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현재까지의 지표 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군산 지역 내의 조개더미는 총 200 여 개소로 이러한 수량은 우리나라 조개더미의 1/3가량을 차지한다. 이렇게 다량의 조개더미가 자리한다는 것은 일찍이 군산 지역 사람들이 새만금 지역의 내륙 수로를 기반으로 하여 역동적인 해양 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방리 남전 유적 2에서 확인된 조개더미는 비록 조사가 되지 않았으나 군산 지역 내의 다른 조개더미와 마찬가지로 우리 군산 지역의 역동적인 해양 문화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