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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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浣 |
이칭/별칭 | 청중(淸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두헌 |
출생 시기/일시 | 1574년 - 김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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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4년 - 김완 무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김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04년 - 김완 청난 원종 공신 1등 녹훈 |
추모 시기/일시 | 1928년 - 김완 옥산 서원에 배향 |
출생지 | 김완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
묘소|단소 | 김완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 서당산 |
사당|배향지 | 이완 배향지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옥산 서원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대표 관직 | 훈련원 참군|광흥창 주부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무관.
[개설]
김완(金浣)은 조선 시대 옥구현에 세거한 경주 김씨 참의공파 출신으로,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고, 훈련원 봉사, 광흥창 주부 등을 지냈으며, 정유재란 때 일본군과 싸워 공을 세웠고, 1596년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청난원종공신(淸難原從功臣) 1등에 녹훈(錄勳)되었다.
[가계]
김완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字)는 청중(淸仲)이다. 옥구에 세거한 경주 김씨 참의공파 입향조인 김생수(金生水)의 7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고 담양 부사를 지낸 김발(金潑)이고,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김세의(金世義)이며, 아버지는 충순위 어모장군을 지낸 김봉서(金奉瑞)이다. 외할아버지는 김돈(金墩)[본관 김해]이고, 장인은 승지(承旨)를 지낸 임적(任翟)[본관 해제]이다.
[활동 사항]
김완은 1574년(선조 7)에 태어났다.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병과 1987위]하였는데, 해당 무과 방목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김완의 무과 홍패와 교지 수점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김완의 무과 홍패와 교지에 수록된 내용들이 1990년에 편찬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와 『경주 김씨 호조참의공 파보(慶州金氏戶曹參議公派譜)』에 실려 있다.
현재 전하는 김완의 교지를 통하여, 1596년(선조 29) 효력부위 권지 훈련원 봉사(效力副尉權知訓練院奉事)에, 1603년(선조 36) 3월 여절교위 행 훈련원 참군(勵節校尉行訓練院參軍)에, 같은 해 8월 7일 진용교위(進勇校尉)에, 8월 17일 돈용교위(敦勇校尉)에, 9월 창신교위(彰信校尉)에, 1604년(선조 37) 2월 과의교위(果毅校尉)에, 3월 소위장군(昭威將軍) 행 훈련원 참군(行訓練院參軍)에, 1607년(선조 40) 광흥창(廣興倉) 주부(主簿)에 각각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1607년(선조 40) 광흥창 주부를 지낼 때 청난원종공신 1등으로 녹훈(錄勳)되었다는 사실을, 김완의 부인 임씨(任氏)가 받은 증숙부인(贈淑夫人) 교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1596년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윤두수(尹斗壽)·이항복(李恒福) 밑에서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1637년(인조 15)에 사망하였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 서당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청난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옥산 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