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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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峨嵯山三堡壘 |
영어공식명칭 | Achasan 3boru |
이칭/별칭 | 아차산 일대 보루군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구리시|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집필자 | 김성신 |
[정의]
[개설]
아차산 3보루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과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에 걸쳐 있는 보루(堡壘)[성(城)]이다. 남북 방향의 평면 긴 타원 모양으로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규모가 가장 크며, 건물지와 저장 시설, 방앗간 등이 발견되었다. 1999년 구리시 전역의 지표 조사를 비롯하여 수차례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05년에는 제1차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 조사를 통해 보루의 내부가 여러 공간으로 구분되고,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출입 시설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는 보존을 위해 복토된 상태이다.
[위치]
아차산 3보루는 아차산 주능선의 끝부분 해발 296m에 자리 잡고 있는데,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49-1과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143-127에 걸쳐 있다. 아차산 6보루와 4보루 사이에 해당된다.
[변천]
아차산 3보루가 속한 한강 유역은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이던 곳으로, 5세기 후반부터 551년까지 고구려가 지배하였다. 아차산 3보루를 비롯해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보루들은 이 시기에 수비를 목적으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구리시 전역에 대한 지표 조사 때 함께 조사되었으며, 2004년 10월 27일 일대의 다른 보루들과 함께 '아차산 일대 보루군'이라는 명칭으로 국가 사적 제455호로 지정되었다. 2005년에는 고려 대학교 고고 환경 연구소에서 8월 17일부터 12월 24일까지 140일간의 일정으로 제1차 발굴 조사를 실시한 후 복토를 하였으며, 2006년 제2차 발굴 허가를 신청하였으나 보존 미비 등을 이유로 허가가 취소되었다. 결국 2007년 9월 헬기로 흙을 공수하여 복토된 상태로 현재까지 보존 중이다. 한편, 발굴 허가가 취소됨으로써 1차 발굴 조사의 내용만으로 2007년 12월 17일 『아차산 제3 보루』 1차 발굴 조사 종합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형태]
아차산 3보루는 외곽에 약간씩 다듬은 할석으로 석축 성벽을 쌓은 후 내부에 건물 및 저장 시설 등 여러 시설물을 축조한 구조이다. 유적의 규모는 둘레 304m, 면적 약 3,100㎡[약 938평]로 능선의 지형을 따라 남북 방향이 긴 타원형이다. 내부는 약간 함몰되어 있으며, 건물지 8기, 출입 시설 1기, 배수 시설 3기, 방앗간 1기, 저장 시설 1기, 단야(鍛冶)[금속을 불에 달구어 벼림] 시설 1기, 방형 석단 2기, 석축 및 계단 시설 1기 등 다양한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확인되었다. 한편 1차 발굴 조사에서는 저수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조사하지 않은 보루의 북쪽에 저수 시설이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현황]
아차산 3보루는 일대의 다른 보루들과 함께 2004년 10월 27일 국가 사적 제455호로 지정되었으며, 구리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2005년 제1차 발굴 조사 이후 2006년에 발굴 허가가 취소되었으며, 2007년 9월 헬기로 흙을 공수하여 복토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아차산 3보루는 백제나 신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했던 고구려 관련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일대의 다른 고구려 보루들과 함께 국경 지대 요새의 구조와 성격, 방위 체계, 군 편제 등을 밝혀 주는 역사 자료이며, 고구려의 남하 과정이나 한강 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아차산 3보루는 보루 외곽과 내부를 연결하는 출입 시설이 확인되었고, 보루의 내부가 축대에 의해 여러 공간으로 구분된 구조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