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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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崇陵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for Sungreung |
이칭/별칭 | 숭릉 표석(崇陵 表石)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현종과 현종의 비 명성 왕후의 무덤인 숭릉의 신도비.
[건립 연혁]
숭릉 신도비(崇陵神道碑)는 1721년(경종 1)에 세워졌다. 『경종실록(景宗實錄)』에 따르면 1720년(경종 즉위) 8월 28일 각 능에 표석을 세우자는 영의정 김창집(金昌集)과 우의정 이건명(李健命)의 건의를 경종이 받아들였고, 다음 해인 1721년 1월 24일 신도비를 세우는 작업을 감독하도록 했다.
[형태·구성]
숭릉 신도비는 화강암 재질의 가첨석(加檐石)[지붕돌]·농대석(籠臺石)[비석 받침대]과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291.9㎝이며 폭은 186.0㎝이다. 가첨석의 높이는 49.3㎝이고 폭은 128.0㎝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서까래와 같은 상세한 표현은 생략되었다. 지붕 용마루의 내림마루[용마루에서 추녀마루를 잇는 부분]가 두껍게 처리되었고 처마선은 수평에 가깝다. 비신의 높이는 159.6㎝이고 폭은 70.6㎝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현종대왕숭릉명성왕후부좌(朝鮮國 顯宗大王崇陵明聖王后祔左)'라고 썼고 현종과 명성왕후의 생몰일·책봉일·장례일 등을 기록한 뒷면의 음기(陰記)는 해서(楷書)로 썼는데, 앞면과 뒷면의 글을 짓고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은 알 수 없다. 농대석은 1단인데 높이는 83.0㎝이고 폭은 186.0㎝이며,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가치 및 의미]
숭릉 신도비는 1682년(숙종 8) 영릉(寧陵)[효종(孝宗)과 효종의 비 인선 왕후(仁宣 王后)의 무덤]의 표석이 건립된 이후에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 왕실 무덤의 능표이다. 영릉의 표석 이후 능표의 양식은 점점 간략화되어 영조(英祖)·정조(正祖) 시기에 확립되었는데, 숭릉 신도비는 능표의 양식이 간략화되는 초기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