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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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顯陵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for Hyeonreung |
이칭/별칭 | 문종 현릉표(文宗 顯陵表)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문종과 문종의 비 현덕 왕후의 무덤인 현릉의 신도비.
[건립 연혁]
현릉 신도비(顯陵神道碑)는 1755년(영조 31)에 세워졌다. 본래 현릉 조성 과정에서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았고, 한동안 조선 왕실의 무덤에는 비석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릉 현릉 광릉 경릉 창릉 선릉 정릉 표석 영건청의궤(厚陵顯陵光陵敬陵昌陵宣陵靖陵表石營建廳儀軌)』와 『영조실록(英祖實錄)』에 따르면 1754년 12월 12일 영조는 다음 해인 1755년이 태조(太祖)의 출생 연도 및 세조(世祖)의 즉위 연도와 간지가 같으므로 감회가 새롭다면서 현릉 등에 표석을 세우도록 명령했다. 1755년 1월 12일 각 무덤의 비각(碑閣) 위치 결정을 시작으로 표석 조성 작업이 시작되었고, 현릉 신도비는 비석의 음기(陰記)에 따르면 2월 중에 건립되었다.
[형태·구성]
현릉 신도비는 화강암 재질의 가첨석(加檐石)[지붕돌]·농대석(籠臺石)[비석 받침돌]과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243.0㎝이며 폭은 130.0㎝이다. 가첨석의 높이는 40.0㎝이고 폭은 114.0㎝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각 부분은 간략하게 표현했다. 비신의 높이는 133.0㎝이고 폭은 59.0㎝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문종대왕현릉 현덕왕후부좌강(朝鮮國 文宗大王顯陵 顯德王后祔左岡)'이라고 썼는데 우참찬(右參贊) 홍봉한(洪鳳漢)의 글씨이며, 문종의 생몰일·책봉일·즉위일 등과 현덕 왕후의 생몰일·책봉일·추존일 등을 기록한 뒷면의 음기는 형조 판서(刑曹判書) 홍계희(洪啓禧)가 해서(楷書)로 썼다. 농대석의 높이는 70.0㎝이고 폭은 130.0㎝이며,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가치 및 의미]
현릉 신도비는 1682년(숙종 8)에 건립된 영릉(寧陵)[효종(孝宗)과 효종의 비 인선 왕후(仁宣 王后)의 무덤]의 표석 이후 지속적으로 세워진 조선 왕실 무덤의 능표 중 하나이다. 능표의 양식은 점점 간략화되어 영조·정조(正祖) 시기에 확립되었는데, 현릉 신도비는 정형화된 능표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