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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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宣居怡 |
영어공식명칭 | Seon Geoi |
이칭/별칭 | 사신(思愼),친친재(親親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바른 |
출생 시기/일시 | 1545년 - 선거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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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3년 - 선거이 전라도병마절도사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598년 - 선거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99년 - 선거이 정려 |
출생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
부임|활동지 | 독산성|독성산성 -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
사당|배향지 | 오충사 -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보성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보성(寶城) |
대표 관직 | 전라병사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무신.
[가계]
선거이(宣居怡)[1545~1598]의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사신(思愼), 호는 친친재(親親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평익공(平翼公) 선형(宣炯), 아버지는 참의(參議)[조선시대 육조의 정3품 관직]로 추증(追贈)된 선상(宣祥)이다.
[활동 사항]
선거이는 어려서부터 지략이 뛰어나고 장수의 자질이 있어, 천거를 받아 사복시내승(司僕寺內乘)이 되었다. 선거이는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왜군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1545~1598]과 함께 한산도 전투에 참전하여 크게 승리하였고, 그해 12월에 독산성(禿山城)[일명 독성산성(禿城山城)] 전투에서 이겼다. 1593년 전라병사(全羅兵使)로서 병사를 이끌고 권율(權慄)[1537~1599]과 함께 경기도 행주(幸州)에서 많은 왜군들을 참살하였다. 왜군들은 선거이를 두려워하며 ‘비장군(飛將軍)’이라 불렀다. 이후, 김천일(金千鎰)[1537~1593]이 진주성에 들어가니 선거이도 군사를 이끌고 가서 함께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홍계남(洪季男)[1563~1597]과 함께 나와 운봉(雲峯)에 진을 쳤다. 홍계남과 함께 권율을 따라 함안(咸安), 의령(宜寧), 울산(蔚山), 경주(慶州) 지역을 옮겨다니며 전투를 했으며, 탄환에 맞아 부상을 당하였다. 그 뒤 충청병사, 충청수사, 황해병사 등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남해(南海), 상주(尚州) 일대에서 활약하였으며, 1598년 울산 전투에 참가하여 양호(楊鎬)[정유재란 때 조선에 온 중국 명나라의 군인]를 도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선거이는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으며,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추증(追贈)되었다. 1799년(정조 23)에 정려(旌閭)를 받아, 정문(旌門)이 고내상(古內廂)에 세워졌다. 고내상은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일대이다. 또 선거이는 전라도 광주에 있었던 원산사(圓山祠)[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毁撤)]와 전라남도 보성군에 있는 오충사(五忠祠)에 배향되었다. 오충사는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48호로 선윤지(宣允祉), 선형(宣炯), 선거이(宣居怡), 선세강(宣世綱), 선약해(宣若海)를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