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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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村洞鴨村-長興髙氏世居地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 있는 장흥 고씨 세거지.
[개설]
대촌동은 조선시대 중기까지 유등곡면이라 부르던 곳으로 복호, 태문, 개동의 세 동네가 있었다. 압촌이란 지명은 1914년에 처음 생긴 동네 이름으로 압촌은 본디 복호[복촌]라 불렀던 곳이다. 압보는 동네 앞에 농사를 위하여 보(洑)를 막아 겨울이면 오리떼가 많이 앉아 압보[현 압촌저수지]라 불렀다고 한다. 복촌 건너에 황곡이라 부르던 동네가 있었는데 황곡을 '누루실'이라 한 것은 황씨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누른다'는 지명이 복촌이 되고, 뒤에 압촌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압촌에 처음 들어온 장흥고씨는 16세 고자검(高自儉)으로 고자검의 아들 고운(高雲)[1479~1550]이 압촌에서 태어났으므로 장흥고씨의 정착은 1456년쯤으로 보인다.
[연원]
오늘날 한국 고씨는 제주고씨나 장흥고씨가 대종을 이루고 있지만, 고구려 고주몽에 상계를 대는 횡성고씨 등의 집안도 있어서 그 본이 101본에 달한다. 광주광역시에 많이 사는 고씨는 장흥고씨로 먼 시조는 탐라국 고을나(高乙那)라 하고, 중조는 공민왕 대 홍건적 토평에 공을 세워 장흥백(長興伯)을 받았다는 고복림(高福林)을 기1세조로 세계하였었다. 근래 제주고씨와 합하자는 논의가 일면서 고말노(高末老)를 1세조, 고중연(髙仲橼)을 10세로 세계하기도 한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장흥고씨들은 고려 말엽 사람 고백안(高伯顔)[3세]이 장성 삼계[당시 영광군 삼계]에 은거하여 살았다. 고백안의 증손자인 고상지(高常志)가 아들 일곱 명을 낳아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고상지의 넷째아들 고자검이 광주 유동곡에 살던 남양홍씨 집안에 장가와 처가살이를 하면서 광주와 인연을 맺었다. 고자검의 큰아들 고운은 광주 토박이인 광산이씨 이호선(李好善)[압촌 이웃 만산에 살았음]의 딸에게 장가가고, 딸을 광산정씨에게 시집보내 압촌에 살게 하였다. 둘째아들 고수(高需)는 다시 광산정씨 집안에 장가갔다.
고운의 아들 고맹영(高孟英)은 충주박씨 박지흥의 처가인 이천서(利川徐) 집에 장가가고, 동생 고중영은 광주 토박이 양등기의 딸에게 장가갔으며, 고맹영의 아들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장성 하서 김인후 집안의 딸에게 장가가 광주 토반 세력의 대열에 올라섰다. 압촌에 자리잡은 고자검의 사위 정서가 1516년 28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고, 3년 뒤 정서의 처남이며 고자검의 장남인 고운도 41세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겹경사가 났다.
광주에 정착한 고씨들은 19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제봉 고경명이 환갑의 나이로 의병장이 되고, 고경명의 두 아들과 순절하면서 충절의 집안으로 지위를 굳혔다. 고경명은 여섯 아들을 낳았다. 둘째아들 고인후는 창평에 살던 함평이씨 집안에 장가가 네 아들을 낳고 전쟁에 나가 순절하였다. 이 집안 후손에서 조선 말엽 고정주가 창평에 학숙을 열어 고제방의 외손자이었던 고려대학교 설립자 김성수(金性洙), 고제기의 외손자로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金炳魯)를 길러 오늘날도 이 집안과의 우정이 두텁게 이어지고 있다.
[자연환경]
압촌은 북쪽으로 송학산을 등지고 남향하여 있다. 송학산 고개 너머에 충주박씨들 집성촌인 서창동 절골이 있다. 압촌 동남쪽에는 광산이씨들의 세거지 만산동네가 있다. 만산동네 앞으로 대촌천 지류인 계천이 흐르고 높이 104.7m의 방구산이 남쪽 바람을 막아준다. 방구산 남쪽이 지석동으로 고싸움이 열리는 칠석동네이다. 근래 동네 서쪽으로 회재로가 지나간다. 회재로 건너에 압촌동에 속하는 6.25전쟁 피난민 정착촌이 있다.
[현황]
1930년 일본 총독부 인구조사 때 41집 중 34집이 장흥고씨였고, 외손인 광주정씨가 10집이었다. 1990년 인구통계 때 고씨가 30가구, 정씨가 11가구였다. 2000년 인구통계 때 66가구 중 46가구가 장흥고씨, 11가구가 광주정씨였다. 길 건너 황곡에도 3가구, 개동에 9가구가 살고 있다. 종가인 고원희(高元熙)는 황곡에 산다. 종가집에 부조묘 사당이 있고, 종가집은 1917년 건축되었으며, 광주광역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동네 어귀에 장흥고씨 삼강문이 있다. 제봉 고경명을 모신 포충사는 이웃동네 원산동에 있다. 고맹영의 동생 고중영의 3대를 모신 황산사도 원산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