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공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426
한자 鑛工業
영어공식명칭 Mining and Manufacturing Industry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장섭

[정의]

광주광역시의 산업 중 2차 산업인 광업과 공업.

[개설]

광공업이란 유용 광물을 탐사, 채굴, 선광하여 그 정광을 제련하는 광업과 1차 산업에서 얻어진 수확물을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제조업을 함께 지칭한다.

[현황]

2020년 광주광역시의 광업, 제조업 및 전기·가스업에 대한 생산 활동의 수준과 그 변동을 측정하기 위해 작성하는 지수인 광공업 생산지수를 살펴보면 전국 106.3에 비해 광주광역시 92.0으로 전국지수에 비해 낮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광주광역시의 생산·출하·재고 지수를 보면 생산 품목 수는 67개, 출하 품목 수는 67개, 재고 품목 수는 42개이다.

[광업]

조선시대 1480년(성종 12) 『동국여지승람』과 1531년(중종 26) 『신증여지승람』의 광산현조에 무등산 장불동에 철이 많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 별다른 자료는 없고, 근래에 있어서도 광구는 있어도 이렇다 할 광산물은 산출되고 있지 않다. 현재 광구로 등록되어 있는 것을 종류별로 보면 금속광이 25개소, 비금속광이 1개소로 되어 있으나, 생산은 거의 없고 가동 광구가 1개소 있을 뿐이다.

[공업]

과거 광주 지역의 공업은 실로 미미하였다. 조선시대 말엽에 유기, 도자기, 목재가구류 또는 죽세품, 나전칠기, 주류 등을 가내수공업으로 생산하였으나 관속 등 특수층에만 국한되어 거래하였고 진상품 조제를 주로 하였기 때문에 일반 서민층의 수요는 극히 적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후반 우리나라의 산업이 전시산업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어느 정도의 공업화를 착수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업종이 이때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광주시의 공업은 급진적 성장을 이룩하였으나 전체 수준으로는 미흡하였다. 사실상 광주시에서 공업 발전의 비약을 이룩한 해는 무엇보다도 1968년~1969년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68년부터 광주시의 제조업 부문 대출액이 농수산 부문의 매출액을 능가하였으며, 광주공업단지가 준공되어 상당수의 업체가 가동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1968년 1년 동안의 건축 허가 건수가 전년비 3.8배나 증가하였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광주광역시의 공업은 1930년대를 시발점으로 하고 1968년도를 변곡점으로 하여 성장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광주광역시의 공업은 횡적으로 분석 검토하여 다른 도시나 지방의 공업과 비교하여 보면 낙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광주광역시의 고용 실태를 타 도시와 비교하여 보면 경제 활동 인구, 취업자 등의 구성비가 전국 시도, 서울, 부산, 대전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둘째, 생산과 직접 관련이 있는 제조업 인구가 취업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광주광역시는 18.9%에 불과한데 타 도시는 30%를 넘는다. 이상 고용 실태를 종합하여 보면 경제 활동 인구나 취업자 비율이 타 도시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지고, 생산인구라 할 제조업 인구 비율은 그보다 훨씬 떨어져 타 도시의 절반도 안 되는 실정이다. 이는 그나마 뒤떨어진 취업 비율이 더구나 제조업체의 부족 때문에 제조업 인구비율은 더욱 크게 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참고문헌]
  • 『광주시사』3(광주광역시사편찬위원회, 1995)
  • 「광주경기종합지수」(광주광역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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