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90 |
---|---|
한자 | 信用協同組合 |
영어공식명칭 | Credit Union |
이칭/별칭 | 신협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우진 |
현 소재지 | 신협중앙회 광주전남지역본부 -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중앙로72번길 3[치평동 1234-1] |
---|---|
성격 | 금융기관 |
전화 | 062-520-7700 |
[정의]
광주광역시에 있는 금융 기관.
[개설]
신용협동조합은 주거 지역, 단체, 직장, 종교 등의 유대 관계를 근거로 조직된 신용 협동 기구이다. 상호 유대를 가진 구성원들이 협동하며 자금을 조성하여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등 구성원과 공동체 건승과 발전을 도모하는 금융기관 성격의 협동 조직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은 1960년 5월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부산의 메리놀병원에서 28명으로 조직한 성가신용협동조합(聖家信用協同組合)이다.
장대익 신부는 한국인 최초로 신협 운동을 시작하여, 1960년 6월 서울에서 가톨릭중앙신협을 창립하였다. 이어 1964년 4월에는 55개의 신용협동조합이 한국신용협동조합연합회를 창설하였다. 광주에서는 1972년 광주와이신협[구 YMCA신협]을 최초로 하여, 1974년에 광주중앙신협, 계림신협, 남광주신협, 양동신협, 밀알신협이 설립되는 등 1970~1990년대에 대부분의 신용협동조합이 집중적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조합원 상호 간의 유대 관계 유지 및 공동 자금의 조성과 함께 조합원의 경제적 어려움 해결이나 금융 편의를 도모하여, 조합원의 건승과 경제·사회·문화적 지위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합원과 지역 사회를 위한 금융 서비스의 제공과 함께 장학회 등의 사회 공헌 재단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와의 공생을 추구하는 각종 사회 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연합회의 창설과 함께 국제신용협동조합협의회에 가입하여 전 세계 신용협동조합과 상호 협력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법」의 제정으로 금융기관에 준하는 감독과 통제를 받으면서 명실상부한 금융기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황]
2017년 기준 전국적으로 895개의 신용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광주 지역의 경우, 광주광역시 동구에는 계림신협, 광주동부신협, 광주중앙신협, 광주충장신협, 방림신협, 빛고을신협, 침광신협, 밀알신협, 광주은행 신협, 아욱실륨신협, 조선대학교신협 등 11개 신협이 운영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서구에는 와이신협, 광주우리신협, 광주원광신협, 광주중부신협, 광주향림신협, 양동행복신협, 화정신협, 광주전남치과의사신협, 삼애신협 등 9개의 신협이 운영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에는 신우신협, 웨슬리신협, 남광주신협, 방림신협, 샘신협, 입하신협, 광주YWCA신협, 광주약사신협 등 8개의 신협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북구에는 문화신협, 미래신협, 신안신협, 두암신협, 북광주신협, 서광신협, 중흥신협, 광주개인택시신협, 광주건축사신협, 광주교회신협, 광주의사신협, 밀알신협, 삼애신협, 전남대학교신협 등 14개의 신협이 운영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는 광주어룡신협, 하남신협, 비아신협, 우산신협 등 4개의 신협이 운영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전역에서 모두 46개의 신협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중앙로72번길 3 아주빌딩 3층에는 신협들에 대한 운영 지원과 감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신협중앙회 광주전남지역본부도 있다.
[의의와 평가]
신용협동조합 운동은 1970~1980년대에는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나, 2000년대 이후부터 재정 악화와 조합원 수 감소, 채권 회수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도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신협 간 통폐합을 추진하며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광주 지역의 신용협동조합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성이 많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와이신협, YWCA신협, 광주양동행복신협[구 광주양동상가신협]이 항쟁에 적극 참여했고 박용준과 윤상원 열사는 이들 신협의 임직원이었다. 신군부 쿠데타 정권은 1980년 5월의 광주에 대해서 철저히 함구하고 기억화 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광주 지역의 신협은 신협 운동과 더불어 광주의 5월 정신을 계승하는 운동을 지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