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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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의미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덕원 |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청동(靑銅)을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는 청동을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이다. 청동기는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하고 주석·아연·납 등 몇 가지 다른 원소의 금속을 배합하여 합금(合金)하는 야금술(冶金術)이다. 이러한 야금술은 고도의 숙련도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에는 석기시대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업의 전문화, 교역의 발달, 계층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남녀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빈부의 격차와 더불어 계급의 분화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강력한 힘을 가진 최고의 권력자 한 사람이 정치와 종교를 아울러 지배하는 새로운 정치 체제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정치 체제를 초기 국가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성읍 국가(城邑 國家)라고 한다. 이와 함께 청동기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이 등장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자들은 식민사관(植民史觀)을 강조하면서 식민지 조선에는 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조선의 역사는 신석기시대부터 시작하였으며, 이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석기와 철기를 같이 사용하는 금석병용기(金石竝用期)를 거쳤다고 하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 활발한 고고학 발굴 결과 1950년대 후반부터 한반도에도 청동기시대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이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유적이 발굴·조사되었다.
[시대 구분]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대체적으로 B.C. 10세기부터 B.C. 3세기까지를 말하고, 요하(遼河) 이동에서부터 송화강(松花江) 이남까지로 그 시기와 지역적인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그리고 비파형동검[또는 요녕식 동검], 다뉴조문경, 무문토기, 고인돌[또는 지석묘] 등의 유물을 표지(標識)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06년에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 유적이 발굴되고, 여기에서 덧띠새김무늬토기[刻目突帶文土器]가 출토됨으로써 청동기시대의 연대를 B.C. 20세기까지 상향 조정하였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신화로만 이해되던 고조선의 단군신화(檀君神話)를 역사로서 새롭게 규정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를 비롯하여 농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였고, 이와 함께 동검(銅劍)·동모(銅鉾)·동과(銅戈)·동부(銅斧) 등의 청동 무기를 사용하면서 계급의 분화도 발생하였다. 그 결과 제정일치의 정치 체제인 성읍 국가라고 하는 초기 국가가 출현하였다.
청동기시대의 성읍 국가는 환호(環濠)나 목책(木柵) 등의 방어 시설을 구비한 취락을 형성하고, 주변의 다른 성읍 국가들과 교류하면서 성장·발전하였다. 그리고 강력한 힘을 가진 소수의 지배자들은 청동기를 독점하였는데, 일반적으로 고인돌은 이러한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유적 분포 현황]
광명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고인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철산동 고인돌은 탁자식[또는 북방식]으로 1기가 조사되었으며, 1990년 현재의 광명시민회관 경내로 이전·복원되었다. 그리고 하안동 고인돌은 개석식으로 1기가 조사되었다.
광명 지역에서 특히 주목되는 곳은 가학동으로, 가학동 지석묘와 도고내 고인돌군의 개석식 3기, 가학동 고인돌군의 탁자식 1기와 기반식[또는 남방식] 4기, 벌말 고인돌의 개석식 1기, 노리실 고인돌의 형식 미상 1기, 장터말 고인돌의 탁자식 추정 1기와 개석식 3기 등 모두 5개 지역에서 14개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광명 지역에 분포된 고인돌의 특징은 한강 이남에 존재하는 극소수의 탁자식 고인돌의 존재와 또 한 유적에서 탁자식과 기반식 또는 개석식 등의 여러 유형이 혼합되어 있고, 산 정상의 능선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기는 대체로 B.C. 4세기부터 A.D. 1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고인돌을 축조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 돌을 떼어 냈던 채석장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가학동의 노리실 고인돌 주위에서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광명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고인돌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양한 유적이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앞으로 이와 관련된 조사·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