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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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肯構亭 |
영어공식명칭 | Geungguj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내리길25길 10[내리 31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개설]
긍구정은 김한손(金漢孫)[1456~1518]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다. 김한손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두운(斗雲), 호는 운천(雲川)이다. 1480년(성종 1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찰방을 거쳐 경연관을 지냈다.
[위치]
긍구정은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내리길25길 10에 있다. 압량읍행정복지센터 좌측 부적길을 따라 약 300m 이동 후, 우측 도로로 약 1.1㎞ 직진한다. 이어 좌측의 압독1로를 따라 약 600m 이동하면 내리 마을이 나온다. 긍구정은 마을 중심에 있는 내리회관에서 북쪽으로 약 250m 떨어진 산기슭에 남향하여 있다.
[변천]
긍구정은 김한손이 처음 지었다. 김한손은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사촌 형으로, 1498년(연산군 4)에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청도에서 경산으로 이거한 후 은거하였다. 김한손은 은거 생활 중에 정자를 지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자는 무너지고 이름도 잊혔다. 1819년(순조 19)에 김한손의 후손인 김영규(金永圭) 등이 정자를 중건하였으며, 이휘재(李彙載)[1795~1875]가 ‘긍구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긍구(肯構)’는 성왕(成王)이 선왕의 대업을 보존하고 집을 지었다는 『주서(周書)』의 구절에서 차용한 것이다. 김한손의 후손들이 1921년에 원래의 터에서 북쪽으로 약간 옯겨 다시 중건하였다.
[형태]
긍구정은 대문채, 아래채와 함께 ‘ㄷ’자형의 배치 형태를 이룬다. 긍구정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중앙에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가구는 삼량가이다. 긍구정 왼쪽에 자리한 대문채는 3칸 규모의 홑처마 박공지붕 건물이다. 중앙은 대문칸이고, 왼쪽은 요(寮), 오른쪽은 창고이다. 긍구정의 오른쪽에 자리한 아래채는 3칸 규모의 홑처마 박공지붕 건물이다.
[현황]
긍구정은 김해 김씨 삼현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는 김한손의 아버지인 김용(金勇)의 향사를 매년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긍구정은 여러 차례 중건되어 원형과는 거리가 멀지만, 15세기 후반부터 이어지는 긴 역사성을 가진 중요한 건축물이다.